그래서 나는 이제 보이는 것만 믿기로 했다
나는 이제 말은 믿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말 따위에 마음을 주고, 정을 줘버린 탓에 스스로 상처를 만들었고 그렇게 생겨버린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만든 상처라 누구의 탓이 할 수 없고 내가 믿어버린 걸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말을 믿지 않으면 끝날 일인걸.
그래도 항상
너를 생각하고 있어
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 때문에 부모를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정했다. 너를 생각한다는 따뜻한 말만큼 행동이 차가워서.
내가 생각한 ‘너를 생각한다’는 말속에는 내 머릿속에 네가 존재하고, 그런 너를 내가 챙겨주고 싶고, 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라 느끼는데 그 마음이 단 한순간도 내게 닿은 적이 없었다.
나를 생각한다는 사람이 내가 어떤 것을 해내지 못하면 “그것도 못하냐 할 줄 아는 게 대체 뭔데”라는 말을 하고, 내가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네”라는 말을 해도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까?
나를 생각해 주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화내고 윽박지르다 내가 겁먹어서 울고 싹싹 빌어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자신의 분이 풀려야만 끝나고, 내가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으니 먼저 차단해 버리는 게 맞는 건가?
아직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지
믿지 않는 두 번째 말, 아직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지라는 말에서 ‘아직’과 ‘이러는 거지 ‘가 참 거슬렸다. 비 꼽게 듣는 거라 해도 할 수 없다. ‘아직 좋아하니까’라는 말이 내가 느끼기엔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혹은 끝내고 싶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상태로 곧 끝나갈 거니까 참아보자라는 뉘앙스로 들렸다. 하기 싫음과 해야 함 그 사이에서 한 혼잣말을 듣는 기분이랄까
말투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말투로 들은 이 말이 나에게는 썩 좋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기 싫지만 하기 싫지 않은 척, 귀찮지만 귀찮지 않은 척하며 건네는 말로 한탄 같았다. 내가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마치 해달라고 하니까 억지로 해주는 것처럼.
아니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기분 탓으로 넘긴 시간만 8개월이다. 처음에는 ‘어?’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역시’가 된, 세 번째 말.
말은 하면 할수록 핵심이 나온다. 긴 서사를 듣다 보면 끝에는 결국 결론이 나오는 것처럼, 말도 서서히 벗겨지기에 나는 몇 번이고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상황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확실히 느끼고 싶어서. 근데 그때마다 끝이 미묘해 확신으로 변했다.
“내 탓이지 누구를 탓해”하면서 흘깃 나를 쳐다보는 눈빛과 내 탓이라고 생각하냐는 내 말에 수습하듯 얼버무리는 너의 말투, 네 탓이라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너의 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럼 그때 그렇게 말한 너의 생각이 무엇이었냐는 말에 말하지 않거나 그게 아니다고만 하는 너의 대답과 내가 기분 탓으로 느낀 그날부터 지금까지 원망스러운 듯 나를 밀어내는 너의 행동까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말로도 나오지 않았을 거고, 행동은 더더욱 나타나지 않을 것인데 말을 넘어 행동에서 느껴지는 거면.
행동은 진심이니까
보인다
이런 말들을 겪고 나니 말은 생각보다 하기 쉽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그래도 생각하니까 이런 말이라도 할 수 있겠거니 했는데 지금은 내뱉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각의 시간차이다. 그동안 나는 나를 생각했다는 부분이 크게 다가와 말과 다른 행동을 해도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생각한 시간에 대해 내가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정말로 나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 정말 이건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얼마큼 생각하길래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대체 이 사람의 진심은 뭘까?
나를 생각한다면서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좋아한다면서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좋아하지 않고, 그렇지 않다면서 그렇게 행동을 하는 이들의 무엇을 믿어야 할까?
그래서 난 이제 생각뿐인 말보다 보여주는 행동을 믿기로 했다. 무엇을 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이미 시작한 사람, 언제 시간 되는 날 한번 보자고 말하는 사람보다 이 날 시간된다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이렇다고 직접 보여주는 사람을 이젠 믿기로 했다. 가만히 내뱉기만 하는 말보다 직접 움직이면서까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노력과 정성으로 느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