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말이 가장 듣고 싶을까?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으로, 주로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미리 정하여 놓고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여 자신이 원하는 답을 하게 하는 사람. 또는 그런 행위. (네이버 국어사전)
‘답정너’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때, 이런 화법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함과 피로감을 느꼈다. 답이 정해져 있으면서 왜 질문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특히 눈치가 없던 나는 내가 상대방의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드는 것 같아 싫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계속 비슷하게 도는 질문만 하니 슬 짜증이 났다. 그럼 물어보지를 말던가!
그래도 계속 겪다 보니 처음에는 “아니” 부정이었다가 “글쎄?” 회피로 바꿨고, 그 후에는 “그래?” 의문형, 그다음에는 “오 그런 것 같아” 동의했다. 진심이 없는 빈말 같은 건 잘 못했었는데 그 덕에 빈 말이 늘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할 때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자괴감이 들지만 그렇게 말해야 도돌이표 같은 질문이 끝나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대답을 했다. 내 대답에 영혼이 없다고 하면 “아냐 진심이야. 진짜로”라고 말하면 끝. 눈치가 빠르면 단번에 의도를 파악하겠지만 남한테 그리 관심이 없는 나는 몇 번 머리를 굴려야 답을 찾을 수 있어서 에너지 소모가 컸다.
처음에는 답정너화법으로 말하는 사람이 답답하고, 재수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이런 말을 들어야 속이 시원할까? 이 말이 그렇게 듣고 싶을까? 싶었다. 특히나 자기가 잘남을 뽐내고 싶지만 티는 안 내고 싶은 그런 류의 말을 할 때가 제일 내뱉기 싫었다. 듣고 싶은 말을 뱉으면 끝날 거라는 걸 알지만, 진짜로 그렇게 생각할까 봐. 그래도 괜한 감정싸움보단 좋게 끝내는 게 낫지 싶어 마지못해 뱉어내고 천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답이 정해져 있다 보니 대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하는 게 꺼려지고, 폐쇄적인 화법이라 거부감이 들어 그런 사람들은 멀리 했다. 답정너 화법을 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원하는 의도를 파악하기까지 기가 빨리니 부담스러웠다. 정상적인 대화를 하고 싶었고, 답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나의 답정너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답정너는 어느 정도 알겠으면서 정작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내가 못 찾고 있으니 답답함이 쌓여갔다. 나는 대체 어떤 말을 듣고 싶길래 같은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걸까? 그들은 각자 나름의 이유들로 말해주고 나는 여러 대답들을 들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닌지 후련하지가 않아 또다시 내 이야기를 멀리 퍼뜨린다.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나는 대체 어떤 말이 듣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