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다시 이어간대도 예전과 같지 않음을 알아

간신히 붙어있는 금이 간 유리잔을 보며

by 별난애

얼마 전, 잘 쓰고 있었던 유리잔이 깨져 버렸다. 평소처럼 깨끗이 씻고 물기를 빼려고 뒤집어놓으려면 그때, 살짝 긁힌 소리가 나 깨졌나 싶어 봤더니 약간 실금이 그여 있었다. 붙어는 있지만 톡 하면 툭 부서질 것 같은, 실금이 생겨버린 이상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고작 실금 하나로 이제 쓸 수 없다는 게 마치 그 친구와의 관계 같기도 해 끄적이는 이번 글.


금이 간 유리잔은 한때 나랑 제일 마음 맞는 친구가 생일선물로 준 거였다. 포장도 손수 뾱뾱이와 선물 포장지로 꼼꼼히 했을뿐더러, 내가 좋아할 만한 걸로 가득 꾸민 손편지까지 준비한 아주 정성스러운 선물이었다. 이 선물을 어떤 생각하며 골랐고,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을지 너무나 느껴져 더욱 아끼고 싶은 마음에 처음에는 전시용으로 두고 싶었으나 그 친구라면 자주 사용하기를 더 바랄 것 같아 바로 꺼내어 쓰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대학생 때 우연한 계기로 같이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와 취향, 성격, 생각,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몇십 년 오래된 친구와 있을 때만큼이나 편안하면서 재미있어 이렇게 나랑 마음이 잘 맞은 친구를 앞으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오랫동안 이 인연을 이어가고픈 마음이 컸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여행을 가보면 싸우기 마련이라 나는 말이 있듯 점점 친해지니 자연스레 여행계획도 세우게 되었다. 초반에는 하루 종일 번화가에서 놀다 헤어지다 점점 시외버스로 갈 수 있는 가까운 타지 당일치기로 넓혀갔고, 그러다 더 늘려 1박 2일, 비행기로 2박 3일, 3박 4일로 특히 여름, 겨울에 주기적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심지어 여행 가기로 말 나온 순간부터도 잘 맞았다. 일정, 동선, 옷차림 등등 정해야 하는 것을 서로 알잘딱잘센으로 하고, 하고 싶은 것마저 비슷해서 양보할 필요도 없었다.


또 아무리 좋고, 친하다 해도 절대로 같이 일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입사동기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첫 사회생활을 겪어냈다. 이미 친구로서 돈독히 쌓아온 사적인 관계를 공적인 일로 지켜야 할 선이 불분명해질 위험이 있음에도 우리는 융통성 있게 관계를 지켜갔다.


여행, 그리고 입사동기임에도 우리의 관계는 이상 없었다. 기분이 상했던 적도, 순간 별로였던 적도, 싸운 적 없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친구가 만약 돈을 빌려달라고 해도 흔쾌히 빌려줄 것 같고, 같이 살자고 해도 그러자라고 할 정도로 이 친구에 대한 신뢰와 마음이 있었다. 이 친구가 좋은 이유에는 나랑 잘 맞는다는 점도 있었지만 닮고 싶을 만큼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기에 과연 앞으로도 멀어질 계기란 게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이 관계는 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톡 - 깨진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깨졌다고 하기엔 애매한 실금처럼. 실금이 생긴 원인에는 누구의 탓도, 누구의 잘못도 없는 ‘안 맞음’ 이 드러났다. ‘안 맞음’을 처음 맞이해서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의 시간으로 기분 탓이겠거니 하면서 매번 넘겼고, 이 친구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아 맞춰가려고 했으나 이미 관계의 끝을 다했음을 느꼈다. 이 이상 더하다가는 감정까지 상할 것 같아 최대한 감정을 덜어내며 차근히 이야기를 꺼내었고 시원도, 섭섭도 아닌, 아쉽지만 아쉽지 않은 감정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쌓였던 마음을 숨김없이 다해 더 이상 미련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금이 간 유리잔 다시 붙이는 방법‘을 검색하는 걸 보니 아직 남아있구나라는 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지만 버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잘 지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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