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불며 매달렸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사람한테 한창 빠져있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여자친구가 없지?’ ‘누가 꼬시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모든 여자들이 내 남자친구를 볼 것 같은 그런 질투심(?)이 있었고 심하게는 내 주변친구들도 잘생겼다고 말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기지만 그때는 진지하게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매일 보지만 계속 더 많이 보고 싶고, 보면 볼수록 좋고, 볼 때마다 설레고. 보기만 해도 좋으니 손 잡거나 가까이 붙어있으면 이러다가 심장이 멎어버릴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그만큼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다. 지켜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는 이런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고 있었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과 이제는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니 그 간극만큼 내 삶이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울며불며 매달렸다.
나는 공과 사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을 휘갈기는 사람에 대해 감정 하나 주체하지 못하는, 사회를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다. 자기감정만 중요하게 여기니 저런 행동을 하지라며 이기적이게 느껴졌다. 아무리 슬퍼도, 아무리 화나도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지만 내가 그런 상황이 되니 진짜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몇십 년 동안 가까이 지낸 나와 친한 사람들한테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거리에서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떠오르는 건 귀찮은 듯한 표정과 그만하라는 그밖에 없었다. 그때 날씨가 어땠는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 후로 그렇게 헤어졌다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같이 일하고 있던 때라 헤어진 당일도,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같이 일할 수밖에 없었다. 헤어졌다고 그만두는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어서 그와의 관계에 대한 웅성거림과 뒷말이 나와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나를 본체만체하고, 우연히 보더라도 애정 따위 1도 없는, 심지어는 남자 동료를 보는 눈빛보다도 더하게 쳐다봤지만 마음이 남아있던 나는 그런 눈빛에도 흔들리기 바빴다. 퇴근해 집에 가면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해도 그 다짐은 그를 보는 순간 무색하게 없어져버렸다. 한창 살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정체기에 머물러 다이어트 의지를 떨어뜨리게 만든 몸무게는 노력을 안 했음에도 순식간에 빠져 최저 몸무게를 찍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당장 다른 일을 구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만두고, 찾아보라고 하면서 절대 매달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나 없이는 안 돌아간다는 핑계를 대며 계속 다녔고, 열심히 매달렸다. 앞에서 울기도 하고, 이야기하자고 붙잡아도 보고, 장문으로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그리고...(이제는 기억이 안 난다)
여하튼 최선을 다해서 매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미련이 점점 줄어갈 때쯤부터는 ‘내가 왜 그랬지?’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렇게까지 울고불 정도로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까지 매달렸을까? 의아했다. 그 사람이랑 헤어진다고 내 인생이 끝난 게 아닌데 나는 왜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밖에 없을 거라는 착각을 했을까? 머쓱하기도 하면서 놀라웠다. 내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울었다는 것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한 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고, 콩깍지 씌면 눈에 보이는 게 없구나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된다는 걸 알게 되니 새로운 내 모습에 신기했고, 그런 내 모습을 봤던 그에게서도 부끄럽지는 않다. 이제 나랑 볼 일 없는 사람이고, 본다고 해도 그때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나와 그와도 상관없는, 그때의 일들을 아는 이들에게(그때의 내가 터놓았던)는 나의 흑역사로 기억하겠지만 이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니까. 그때의 나는 그게 진심이었고, 그렇게 진심을 다해 열심히 매달린 덕분에 미련이 없어졌음에 마음이 깨끗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매달릴 것 같다.
한창 재회를 바라며 찾아본, 재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매달리지 않고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나는 매달려서 그런지 재회하지는 못했지만, 매달린 덕분에 ‘뒤늦은’ 미련은 없어 후회하지 않기에 앞으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지만 생기더라도 나는 나 그대로 매달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