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 ‘처음’이 중요한 이유

그리고 2가지 두려움

by 별난애

‘처음’을 생각하면 두려움, 걱정, 설렘, 두근거림, 긴장, 부담감 등 복합적인 감정이 순식간에 뒤섞인다. 어릴 적 처음이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처음 크게 넘어졌을 때 느끼는 아픔과 서러움

처음 원하는 것을 이뤘을 때 뿌듯함과 벅참

처음 무언가를 스스로 해야 할 때 긴장과 부담감


이 떠오른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의 비율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지는데 어느 날은 처음이 설렘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과도한 긴장으로 어지러움까지 느낄 때가 있다.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이 다른 ‘처음’. 나는 이런 ‘처음’만 있는 줄 알았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처음.



첫, 번째 처음


‘처음’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순간은 ‘처음’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다. 그전까지는 학교를 다니니 ‘학생’의 신분으로, 실수해도 ‘학생인데 뭐 어때’, 철없는 행동을 해도 ‘아직 나 학생이야’라고 말하며 학생이 가지고 있는 어느 정도의 자유와 너그러움을 핑계 삼아 책임을 회피하였다. 일을 벌여놓고 나몰라라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라고 해봤자 내가 소속된 가족, 알바, 동아리, 대외활동 정도밖에 없었고, 이것들의 책임이 그렇게 버거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도 다 처음이었겠지만 그때의 처음은 가벼웠다. 긴장도, 설렘도, 두려움도, 부담감도 물어뜯은 손톱만큼 작아서 그래서 더 쉽게 했고, 실패해도 괜찮고, 해내면 좋다는 생각으로 미련 없이 했다.


게임으로 비유하면, 그동안 나랑 레벨이 비슷한 사람들과 위험하지 않는 환경, 그리고 죽어도 다시 아무렇지 않게 부활하는 ‘연습’ 같은 환경에서 평생을 놀다가 이제는 레벨이 높아져 실전으로 갈 수밖에 없을 때 같았다. 나는 아직 여기서 더 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가야 했고 내가 입고 있던 ‘학생’이라는 옷과 들고 있던 기본템은 그럴싸한 옷과 새로운 아이템으로 바뀌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별로인 마음이 들었다.

‘연습’ 존에 있으면서 때로는 지루할 때도, 심심할 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건 ‘편안함’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봤자 나랑 비슷한 사람, 경쟁을 해도 이기나 지나 의미 없고, 무언가를 잃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별 타격 없는 환경에서 노는 게 편했다. 적당한 노력과 적당한 마음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성장했다면서 환경이 바뀌어버리니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아직 실전으로 나갈 자신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는데 야생 같은 환경에 던져지니 한없이 약했다.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으며, 도와주고 싶지만 도울 능력조차 없었다. 나름 그래도 해보기 위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제대로’는 하지 못했다는 말과 이미 알고 있었던 나 자신에 실망을 했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는 것도 없어 ‘나는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자책의 괴로움으로 움츠러들고 존재의 가치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 다 포기하고 싶다.


두 번째, 처음


그래도 어째 저째 시간은 간다던가. 작은 하나에도 어쩔 줄 몰라하던 내가 이제는 여러 개를 동시에 하기도 한다. 뇌에 입력된 건지 몸이 익힌 건지 자동적으로 매뉴얼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업무들이 몰아쳐도 나름의 기준으로 순탄히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신입이었을 때는 이건 어떻게 하는 거고, 저건 저렇게 하는 게 맞는지 재차 확인의 확인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최종 확인만으로 깔끔하게 끝냈다. 이제는 어려울 것 없고, 최소 한 번씩은 겪어본 것들이라 하는 방법을 익히 습득이 되어 웬만한 건 무난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으니 그제야 편안함이 찾아왔다.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에 해결할 수 있으니 마음이 편했고 긴장이 풀어졌다.


그때쯤 찾아온 두 번째 처음.

이전에 경험했었던 일이 다시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그때 익혔던 해결방법으로 대처하였으나 먹히지가 않았다. 엇, 또 찾아온 것이다. ‘처음’이.


나는 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했을 때 해결되었던 적이 있어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가 안되면?

나는 모르지.

그동안 ‘처음’을 겪어 왔기에 ‘처음’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또 ‘처음’이다. 처음의 처음, 두 번째 처음.



‘처음’이 중요한 이유


나는 도전, 재미, 흥미를 좋아해 하고 싶은 것에 꽂히면 하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 처음의 두려움보다도 설렘이 더 많아서.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그걸 해본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것이 곧 나의 성취이자 뿌듯함이라 무작정 달렸다. “새로 생겼대? 가보자”, “언제 뭐 한다는데? 갈래”, “해볼래? 그래” 먹는 걸 좋아하는 어린애한테 맛있는 음식을 주는 것처럼 재미있을 것 같으면 앞만 보고 가는 직진이 되었다. 도장 깨기 하듯 하나둘 부수며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았다. 누군가는 그게 뭐 대수냐 해도 나에게는 자부심이었고, 자신감의 근본이었고, 자존감의 뿌리였다. 그동안 나에게 ‘처음’은 도장 깨기의 도장 같은 거였다. 경험했을 때 좋았다면 도장 찍는 게 뿌듯하고, 그냥 그랬다 하더라도 도장이라도 찍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차라리 안 찍고 싶을 때가 있다. 도장을 다 받으면 달콤한 보상이 기다릴 걸 알지만 그 빈 공간을 흔적으로 남기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경험을 했을 때였다. 그간 찍었던 도장들에 뿌듯함을 느끼고 앞으로 찍을 도장이 원동력이었는데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지고 포기할 만큼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는 첫 경험이 안 좋았을 때. 사람이든, 일이든, 나 자신이든 방법을 몰라 어쩔 줄 모르는 게 아닌, 알아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때. 말어도 다른 길로 빙 둘러가고픈 그 정도의 처음은 그때만으로 충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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