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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 내일을 기대하는 일을 만드는 게

살아갈 이유임을 느낀다

by 별난애


첫 번째 퇴사


첫 번째 퇴사를 했던 때는 그해 하반기가 시작되었을 무렵에 마음을 먹었다. 퇴사의 이유 중에서 ‘내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될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차있었다. 매일매일이 한계고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내년에도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과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퇴사를 마음먹은 후부터 퇴사 후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것, 해보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퇴사하는 날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퇴사를 하고 미리 적어두었던 버킷리스트들을 이루어갔다. 일했던 날동안 하루도 온전히 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의 버킷리스트들은 다소 소소한 편에 가까웠는데 거의 ‘평일 낮에 OO 하기’였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 늦은 저녁때 집에 들어왔던 터라 평일 오전과 이른 오후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래서 해방한 느낌을 먼저 받고 싶어 퇴사를 하자마자 평일 10시부터 4시까지 밖에 나와있었다. 나와서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고, 사람이 몇 없는 산책로를 걷고, 한적한 카페의 분위기를 느꼈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는 없는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커피 한잔의 여유랄까. 자유를 느끼면서 돈을 벌면 좋겠지만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때의 나는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두 번째 퇴사


그리고 몇 개월 뒤 나는 다른 회사에 입사를 지원했고 운 좋게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를 한 이유는 놀랍게도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더 정확히는 내가 느끼고 싶었던 여유를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도 아니었고, 일을 하지 않아서 느끼는 죄책감이나 조급함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즐겼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래서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의 마음으로 지원한 곳은 생각보다 괜찮은 자리였다. 첫 번째 직장보다 월급은 낮았지만 그만큼 업무의 난의도가 낮았고, 회식도 없었고, 연장근무도 없었다. 당연히 주말은 쉬는 날이었다. 이 월급 받고 충분히 계속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이상 계속 다닐 생각이었다.

심지어 그전에 쉬었던 덕분인지 일을 하면서 활기가 돌았다.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구나, 열심히 살고 있네’라는 뿌듯함에 부지런히 업무를 수행해 갔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할 일을 찾아내서 할 정도로. 일을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 만족감이 커졌고 신난 탓인지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냈다.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도 꽤나 잘 맞아서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시간은 꽤 지나있었고, 생각보다 오래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퇴사를 했다. 퇴사의 이유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고 느껴서. 누군가는 이런 이유로 퇴사를 하는 게 의지가 부족하고, 끈기가 없고, 포기가 빠르고 복에 겨웠다 생각하겠지만 나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가 같은 쳇바퀴의 삶이 지겨웠다. 그래도 지겨움 하나로 퇴사를 하기엔 아깝고 나쁠 게 없는 너무 좋은 자리여서 후임자 공고를 내야 하는 마지막날까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고민과 협의 끝에 퇴사를 결정했다.



지금의 생활

그 후부터 지금까지 무직으로 살고 있고 퇴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이번 퇴사는 첫 번째처럼 해방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고, 후회를 하기도 하고, 헛헛하면서 심심하고 외로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이런 감정이 지속되다 보니 쉬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고 물 먹은 솜처럼 축 처지기만 했다. “나는 앞으로 뭐 하면서 살아야 할까,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이제 뭐 해야 하지? “의 굴레에 빠져버렸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해냈을 때 오는 뿌듯함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이라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직장을 다시 구해 일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가 “그럼 어쩌자고?”라는 말이 나올 텐데 딱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럼 어쩌자고? 뭐 하자고? 뭐 할 건데?

수없이 물어봤지만 내 대답은 “몰라”였다. 무언갈 배워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일을 안 하니 해야 하는 것이 없었고, 취미로 배워보고 싶은 것 둘 다 없었다.

그럼 대체 무엇을?


방황 끝에 나는 활동을 해보기로 생각했다. 부담이 없고 심심할 때 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영화 보기, 요리하기, 체험하기, 만들어보기 등의 “OO 하기.”

더 자세하게는 오늘은/내일은 어떤 장르의 영화 보기,

오늘은/내일은 어떤 요리를 해보기,

오늘은/내일은 어디 가보기

아니면 주 2회 영화 보기, 무슨 요일은 어떤 거 해보기.

같이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는 것이다.


게임에서 퀘스트를 깨듯 하나씩 해보니 하루가 심심하고 권태였던 시간을 소소한 특별함으로 만들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사는 갓생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단지 재미있고 싶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의무감과 책임감이 없는 일에 내일을 기대할만한 것을 만들고 있다.


요즘 내가 이렇게 살고 있고, 내일을 살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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