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의 기준은 내가 생각한 그대로일 때
손절에 대한 생각
‘손절’이라는 단어가 나는 참 차가웠다. 어떠한 계기로 상대방과 부딪히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너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 않고, 이제 보지 말자고 냉정하게 등 돌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했다. 우리가 부딪힌 게 누구의 잘못이 아닌 일인데 자기가 상처받았다고 해서 이렇게 관계를 끊어버리는 건 너무 자기 생각만 하는 이기적인 행동이라 느꼈다. 서로 맞춰나갈 생각도 안 하고, 상대방의 입장도 고려 안 해보고 자기 기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같아 너무 싫었다. 사람을 대차게 밀어내고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한창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손절이 답이다’는 식의 조언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자기중심적인 태도처럼 느껴졌다. 내가 상처받았으니 넌 아웃.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물론 상대방이 고의든 고의지 않든 피해를 주면 당연히 선을 긋는 게 맞다.
하지만, 일상적인 경우는?
분명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가 달라서 부딪히는 문제는 서로가 상처를 받는다. 나도 받고, 너도 받고.
근데 자기만 받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내쳐버린다. 그렇게 쉽나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관계가 한 사람이 내치면 끝이라지만 너무 냉정한 것 같았다.
그나마 부드러운
손절의 태도
나는 손절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다만 방법을 조금 부드럽게 했으면 좋겠다. “나 이제 너 싫어. 다시 보지 말자” 가 아니라 “나는 그동안 이렇게 느꼈어. 그래서 생각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라며 내 입장을 충분히 말하고 그에 대한 상대방의 입장까지 듣고 관계를 끝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나는 그동안의
데이터가 쌓여서 이미 결론이 났으니까 -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는 걸 상대방은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는 내 입장이다. 말해야 안다. “이런 것까지 말해야 돼? 알려줘야 해?” 알려줘야 한다. 이 두 가지 의문 다 내 입장이다. 내 기준에서는 그럴 수 없는 것이고 당연히 한 것들이지만 그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고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다.
나는 관계라는 게 두 사람이 함께 만든 거지만 한 사람이 끝내고 싶으면 끝나는 거라고도 생각하고 좋은 이별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유독 연인 관계에서는 그렇고 우정은 좋게 끝낼 수도 있다고 믿는다. 내가 ‘좋게’ 해도 상대방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그나마라는 거다. 혹시 모르지 않냐,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생각했을지, 그래서 오히려 내가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지. 그래서 나는 물어본다.
“나는 그동안 너의 이런 말과 행동, 태도로 인해서 어떤 감정을 느껴서 이렇게 생각했어. 그래서 나는 이제 너를 보면 이렇게 생각할 것 같은데 그때 왜 그렇게 한 거야? “라고.
손절의 기준
이렇게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대답에서 내가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다르게 나올 때 ‘너는 이 부분을 생각했구나’라는 게 느껴진다. 분명 같은 상황인데 나는 A라고 느꼈고 상대방은 B라고 느꼈다는 것이 보였다. 그럼 ‘아,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내가 너무 단정 지어서 생각했네.’라고 미안한 감정이 들 수 있다. 그럼 조금은 오해가 풀어진 채로 끊어지려고 했던 관계가 다시 이어갈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은 높아진다.
하지만, 반대로 ‘역시’라고 생각될 때는 그만둬야 한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는 상처를 받은 것이다. 오해도 없다. 내 생각과 상대방의 일치해서 맞으니까. 더 이상의 이야기도 필요 없다. 역시는 역시다.
대답은 아니라고 답할지라도 덧붙이는 말과 말하는 태도와 목소리의 톤, 눈의 흔들림을 보면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솔직한 사람들은 평온하고 막힘이 없다. 왜냐하면 생각한 그대로 내뱉고 있는 거기 때문에. 하지만 반대의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일단 그게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급하게 머리를 굴린다. 흥분하고 말이 빨라진다. 초조해지고 불안하다. 속았으면 하는 마음에. ‘역시’는 눈에 보인다. 그동안의 혹시나 했던 마저 사라지게 만드니 이제는 관계를 이어나갈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