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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 그동안 뭐 했어요?

by 별난애

그동안 나는 무난한 길을 걸어왔다. 남들처럼 초중고, 대학교를 나와 취업을 준비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번째 퇴사를 했을 때는 하고 싶었던 것을 제대로 준비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퇴사를 해 준비 겸 쉬고 있었을 무렵 문득 다른 일이라도 빨리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부랴 준비를 했고 1년도 안되어 운 좋게 재취업이 되었다. 두 번째 회사는 복지와 사람, 업무 등 만족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오랜 고민이 있었고 퇴사를 할 때까지도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퇴사를 한 이유는 이 일에 미련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나의 생활이다.



퇴사까지의 사정


나는 첫 번째 퇴사를 하고 몇 개월정도 지나니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퇴사를 후회한 건 아니고 이렇게 여유롭게 쉬면서 준비하는 것보다 어떤 일이든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퇴사 한지 1년도 안되어 취업 준비를 했고 빠르게 두 번째 입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두 번째 퇴사를 마음먹었을 때 왠지 그때와 같이 그만두면 얼마 뒤에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떠올랐고 아니나 다를까 일정 시간이 지나니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두 번째 입사는 매번 이야기하지만 정말 운이 좋았다.

관련 없는 경력과 해본 적 없는 경험, 잠깐의 공백기는 치명적이다. 취업의 첫 단계가 서류인데 이런 요소들은 무조건 서류탈락에 가까운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큰 기대 없이 가볍게 지원했다. 간절함도 없었다. 안될 걸 아니까. 정말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식이었다.

그런데 웬걸, 최종 합격이 되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의 무엇을 보고 판단하신 건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 정도로 나는 그렇게 실력 있는 인재가 아니었지만 덕분에 빨리 일하고 싶은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일할 생각에 생기가 돈 나는 열심히 일을 했다. 대우와 환경, 주변 사람들까지 괜찮은 편이라 퇴사할 이유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만 더 하거나 아니면 이 경력을 활용하면 한 단계 더 높은 직급을 달수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도 망설였고, 주변 사람들도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한 건 이 업계에 관심이 없어서였다. 더 높은 직급을 단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욕심과 미련이.

일하면서 업무든 사람들이든 크게 데이지도 않았고, 충격받을만한 큰 사건도 없었다. 자잘한 일들은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어서 전체적으로 무난한 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환경(어느 하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에 있을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하기에 더더더 고민이 많았다. 내가 원하지 않는 미래라도 안정적이고 무난한 삶을 이어갈까? 아,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다. 그만두는 게 맞겠다 싶었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취업구인사이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공고와 지원조건을 살피고 그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수정해 서류를 넣었다. 나는 고학력자도 그럴싸한 자격증도 없지만 그래도 내 경력과 경험이 부끄럽진 않았다. 심지어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경험을 한 이력들이니까. 당연히 후회도 없다. 그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을 테니까.


혹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어필이 잘 안 되었다더라도 면접 기회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보완하여 말할 자신이 있다. 근데, 면접에서 “그동안 뭐 했어요?”라는 질문은 언제 들어도 말문을 막히게 했다. 만약 면접에서 “이런 적이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었나요?” 혹은 “왜 이런 일을 하셨고 그만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는데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은 ‘그동안 네가 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뜻으로 들렸다. 분명 그동안의 일들은 나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뻔히 적혀있는데 물어본다는 건 어떤 의도일까, 짧게 자기를 소개해보라는 뜻일까? 도 생각해 봤지만 순수하게 묻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뉘앙스 차이를 알기 때문에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면 이런 거 가지고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결과가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시간과 정성을 쓴 건 틀림이 없는데 그것들마저 아무것도 아니고, 별거 아니고, 쉬었다고 여기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불합격임을 떠나서 그동안 나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취급을 받아 정말 의미가 없는 것일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동안 뭐 했냐는 질문에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게 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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