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는 의지와 열심히 하는 태도보다도 잘하는 것
아르바이트를 하든, 어떤 업무를 맡든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꽤 들었다. “일머리 없다, 안 맞는 것 같다, 느리다, 언제까지 이럴래” 등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며 언제까지 하나만 할래?라고 할 정도로 손이 느린 편이었다.
내가 못하는 건
‘처음’이라서
처음 비난과 핀잔을 들었을 때 자책이 깊었다. 나를 왜 이렇게 못할까, 이런 것도 못하면 앞으로 뭐 할래, 할 줄 아는 게 뭔데? 식으로 부모한테 들었던 말을 스스로 하며 몇 배로 나를 괴롭혔다. 자존감은 점점 깎이고 자신감은 없어지고, 그러다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들어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조금만 못하면 안 맞다고 도망가버리고, 잘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해 버리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만들고자 자책보다는 ‘잘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다. “누가 처음부터 잘해? 배우면서 점점 잘하면 되지. “ 라며 ‘처음’을 앞세워 핑계를 대었고,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포기하지 않는 데 목표를 두었다. 그리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못한다고 손가락질했던 그들에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못한 건 ‘처음’이라서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 후부터는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짜로 보여주고 싶었고 대놓고 일을 못한다고 비아냥거리며 깎아내릴지라도 절대로 도망가지 않았다. 잘하고 있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 ‘인정’ 받고 싶어서 노력했다. 내가 꼭 해내리라. 비록 지금 못하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잘하게 될 것이라 믿으며 계속했다.
반복적인 노력 끝에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고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나와 같은 반응이 아니었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해낸 건 ‘겨우’ 하나, 이제? 어느 세월에? 언제까지? 등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속도가 느리고 남들이 한 번만에 하는 걸 기어코 두세 번 해야 된다는 걸 일치감치 알고 있었다. 일머리나 센스는 타고나는 거라 하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한 사람일까 억울했다.
“에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점점 하다 보면 느는 거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서는 성장보다는 실력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인지 해보려고 하는 사람보다 해봤던 사람, 하고 싶은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유독 너그럽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나 성실한 태도와는 상관없이 잘하면 용서가 되고 반대로 못하면 한심하게 대하는 게 억울했다. 시간을 더 많이 들이고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을 왜 들어야 하며 왜 나는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느릴까 억울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나 또한 내가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만둔 이유
‘나만’ 포기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면 일은 잘 못하는데 열심히 하고 점점 나아지지지만 그럼에도 느리다. 그래서 일을 못한다고 혼내기에는 열심히 하고, 심지어 나아지는 것 같아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나를 포기한다. 스스로 포기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다들 내가 그만두려는 이유가 힘들어서 또는 원하는 부서에 가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내가 없어도 되고, 없어야 된다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누구는 기분 탓이라고, 나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말했지만 그만두겠다는 말을 뱉고 나서의 반응에서 확신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아무 곳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래서 그만둔다 해도 아쉽지 않은 나라는 존재가 필요가 없는 것 같아 비참했다. 반대로 모두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도 부담스럽겠지만 스스로 나가줬으면 하는 눈치를 주는 것보다 차라리 일 못한다고 내쫓기는 게 낫겠다 싶었다. 비슷한 경우로 왜 악플보다 무관심이 더 무서운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솔직히 일도 힘들긴 했다. 하지만 그저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고 그만 둘 정도도 아니었다. 처음 일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말했다. 일을 못하고 있는 거 스스로 알고 있다고, 그래서 노력하겠다고 열심히 하겠다는 말보다 언제까지 잘해보겠다라며 지켜봐 달라고 했고, 덧붙여 그만두지 않고 꼭 해내겠다고 말했다. 어디서 나오는 패기인지 자신감인지 내가 한 말들이 되려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나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유 없는 비난이 아니니까. 못하는 거 맞고, 일처리가 느린 것도 맞고, 그러니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고. 다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이유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않고 깔끔하게 인정했다. 그래서 난 열심히 잘할 생각만 하고 그만둘 생각은 한 적이 없었는데 혹시 그만뒀으면 해서 돌려 말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한낱 근무날이 아닌데 할 말 있다며 부르더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며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 일과 안 맞는 것 같다며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눈치가 없었던 건지 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출퇴근 1시간 전후로 자체 연장근무하면서까지 열심히 했다. 그러나 고작 며칠 뒤에 나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나라는 사람이 쓸모없어서 버려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만둔다고 했다. 전에 겪었던 상황과 같은 의미인 것 같아서. 내 존재가 중요치 않고, 필요 없다는데 내가 굳이, 기어코 더 있겠다 하면 그건 내 욕심이고, 나만 비참해질 뿐이니까. 그리고 나 하나로 인해 모두가 피해를 받는 거니까.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만둔 이유에 대해 포기를 쉽게 한다거나 일이 힘들어서라거나 얼마나 일을 못했으면 그런 말을 할까 한심하게 보든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필요 없고 그런 이유로 그만둔 게 아니라고 굳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떠들게 내버려 둘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나저러나 그만두는 건 맞으니까. 또 그만두냐고, 의지가 박약하다고 얼마든지 비아냥 거려라. 내 퇴사가, 내가 한 선택이, 내 인생이 너한테 그렇게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간섭하나 싶으니까. 내 걱정은, 내 앞날은 너보다도 내가 제일 많이 하니까, 네 인생이나 잘 챙기라는 말만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