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밖에
캥거루족
성인이 되어도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일컫는 용어로,
부모에게서 벗어나 첫 독립을 시작했을 때는 ‘오롯이 내 몫을 내가 책임지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뿐이었다. 나도 이제 내가 알아서! 하는 어른, 성숙해지는 과정에 접어들어 어엿한 사회인이구나! 하며 스스로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오래도록이나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미성년자라는 신분’과 ‘돈’때문이었다. 집을 계약하려고 해도 미성년자의 신분으로는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했고, 알바 또한 그랬다. 아르바이트도 겨우 하나 주말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월 30만원 정도 벌었지만 그마저도 그들이 80% 정도 떼어갔기에 집을 구하는 것도, 생활하는 것도 불가능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공간에서 숨 죽이며 견딜 수밖에 없었다.
돈, 돈이 문제였다. 미성년자라는 신분은 시간만 지나기를 바라면 되는데 돈은 그렇지가 않으니 가끔은 비위 맞춰주며 살까? 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살면 이 세상에서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과 우연찮게 죽게 되면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돈은 베풂이 아닌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같이 ‘돈을 받으면 시키는 것을 해야 한다’는 대가성 조건이 있었던 게 제일 역겨웠다. 그들이 퇴근해서 오면 내 기분과 상황이 어떻든 버선발로 문 앞으로 나와 반갑게 맞이해줘야 하고, 그들이 자리에 일어나기 전까지는 일어나면 안 되고, 그들이 기분이 안 좋으면 기분 좋게 재롱을 부려야 하는. 나는 항상 기분이 좋아야 하고 나쁜 티를 조금이라도 내서는 안되었다. 이게 만약 정말로 정상적인 가족관계이라면, 이런 게 부모 자식 간의 지켜야 할 기본예절이라면 나는 기꺼이 불효를 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쉽게 취업할 수 있는 곳, 실업계열로 진로를 바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고 그 후 나의 독립이 시작되었다.
첫 집을 구했을 때 보증금과 월세 외에도 관리비, 생활비, 보험료 등 생각보다 매달 나가야 하는 돈이 생각보다 많아 순간 이 돈이 안 나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이 드니 너무 아깝다 면서도, 그렇다고 거기를 다시 들어가 비위 맞추며 살자니 못 살 것 같고 혼자 딜레마를 겪었던 때가 있었다. 어쨌든 결론은 그 돈이 아까운 것보다 내가 편히 사는 게 더 중요하다 느껴 차라리 없는 돈, 내 돈이 아니다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자유와 평화를 즐기며 살다가 우연찮게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친구들은 그 돈(내가 매달 나가는 돈)을 저축하거나 여행하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데 쓴다는 걸 알아버리게 되었다. 나는 이 돈으로 낼 거 내면 없어서 어떻게든 그 안에서 먹고사느라 바쁜데 그들은 즐기면서 살고 돈도 나보다 더 있으니 순간 억울해서 그들을 속으로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부모님한테 아직도 의지하네, 어리다.’
그들을 무시하고 얕잡아봤다.
사실 부럽지만 부러워하고 싶지 않아서 그들을 속절없이 비난의 화살을 속으로 휘갈겼다.
부모와 같이 사는 니들이 내가 월세, 보증금, 관리비 내는 돈으로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내 앞에서 돈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야?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건데?
니들은 조금만 더우면 여름에 에어컨, 추우면 겨울에 난방 빵빵 틀어놓지? 그거 다 얼만지나 알아?
니들은 퇴근하고 집 오면 냉장고에 뭐라도 있지? 쉬는 날에는 부모님이 밥 차려주시지? 김, 참치, 통조림, 각종 반찬, 국 끓이는 거 별 거 아닌 것 같지? 너네 식비 얼마 나오는지 알아?
니들 주방, 거실, 화장실 가만히 놔두면 그대로 있는 것 같지? 착각하지 마 그거 매번 청소하니까 깨끗하게 있는 거야
니들 내 자취방 보고 당황했지? 너네 이런 집에서 지내려면 얼마 필요한지 알아? 또 내가 쓰는 물건들 보고 이래라저래라 이거 말고 그게 더 좋다는 둥, 그걸 몰라서 그랬겠니? 간섭 떨고 싶으면 사주고 말하던가. 부모님한테 얹혀사는 주제에.
나의 이 시기질투는 나를 참 모나게 만들어버렸다.
사실은 나도 그러고 싶은 거라고, 그러고 싶은데 그러고 싶지 못하니 부럽다고, 그냥 부럽다 말하면 되는 것을. 그거면 되는 것을 나는 차마 말할 수가 없어 속으로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