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개인차 느끼는 포인트
나는 사실 그동안 ‘대화가 잘 통한다’라는 말이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살면서 말이 안 통한다고 느꼈던 적은 있어도, 대화가 안 통한다는 느낌은 딱히 받아본 적이 없어서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검색해 본 적이 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경청과 공감을 잘하고 솔직하고, 개방적인 태도와 긍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특징들 보면서 나는 이때까지 이런 사람을 못 만난 건가? 아니면 내가 못 느꼈던 건가? 싶을 정도로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경청.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들었던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 거리감이 생겼고
공감. 나와 조금도 비슷한 상황이 아닌데 공감하려고 하는 모습이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솔직함. 숨김없이 내뱉는 솔직함은 오히려 오해와 상처가 되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고
개방적인 태도. 내가 얼토당토 한 말을 해도 다 이해한다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마지막으로 긍정적 언어사용. 모든 것을 좋게 바라보는 건 오히려 그렇게 바라보지 못한 내 탓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렇게 느껴졌던 이유들로, 많은 사람들이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잘 와닿지가 않았다.
대화가 잘 통한다. 대화가 잘 통한다의 기준이 무엇일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해야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걸까? 절대적인 기준인가? 절대적이라면 나는 모두에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만약 상대적인 거라면 나에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고,
나는 대화가 잘 통하는 축에 속하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깨닫게 된 일이나 속히 결론 내려지지 않아 한편의 잡념으로 가지고 있다가 같은 한 사람에 대한 상반된 반응으로 나뉘었던 순간을 경험하면서 어렴풋 알게 되었다. 한 사람에 대해 어떤 사람은 잘 맞는다고 느꼈던 한편, 다른 이는 답답하다고 했다. 같은 한 사람을 동시에 만났는데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그 사람은 잘 맞으면서도 답답한 사람이 되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생각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속도와 느낌, 그 외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동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 대화가 잘 통한다 ‘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상황을 떠올려보면 대략 이런 반응으로 나뉘었던 것 같다.
나 : 나 오늘 _____했다
A : (궁금) 갑자기? 왜?
B : (반응) 재밌었겠다 / 슬펐겠다 등의 ~그랬겠다
C : (결과) 어떻게 됐어?
D : (계기) 어쩌다 하게 되었어?
E : (느낌) 해보니 어때?
내가 원하는 반응은 무엇일까? A~E까지 또는 F~부터 또 다른 여러 반응들이 있겠지만, 일일이 상황에 대한 내가 원하는 반응을 나 스스로, 혹은 상대방이 찾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도, 상대방도 안 찾는 것이 제일 베스트. 난 그런 관계가 ‘나랑 잘 맞는 사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해’라고 안 말해도,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