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회피와 책임전가
“거 좀 대충대충 하지 말고”
“열심히 좀 해라 “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나는 이런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그들이 보기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고 심지어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니 보는 입장에서는 속 답답해서 한 말이겠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대충 한 거? 솔직히 맞다. 대충 했다.
왜냐하면 이게 나에게 중요치 않았는데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였다. 내가 자발적으로 할 마음도, 내가 왜 해야 하는지도 이해가 안 되었고 하기 싫었지만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한 셈이다. 그래도 했다. 속으로는 ‘그렇게 중요한 거면 네가 하지.’라고 구시렁대면서.
그리고 반은 틀린 이유는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가 아니라 그래도 한번 보고 넘길 거 두 번 봤고 스스로 이 정도면 됐다 느낄 정도로 했다. 처음부터 내가 할 게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내게 주어졌으니 일단 하고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대충 한 것도 맞지만, 열심히 한 것도 맞다.
그럼에도 “대충 한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말을 들으니 나는 더 불만이었다.
“애초에 할 마음도 없었는데 시켜서 억지로 했더니만 뭐라 하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그러면 네가 하지 그랬어”
이건 내 일이고 저건 네 일이야. 나는 분명하게 나누는 게 좋았다. 그래야 집중의 범위와 책임의 역할이 분산되지 않고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혹 이렇게 하는 것이 정 없고, 칼 같다할지라도 난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이런 말 듣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임의 무게에 짓눌리지 마라’
나는 이 말을 듣고 조금 비웃었다. 왜냐하면 책임이 짓눌릴 만큼 본인이 일을 만든 건 아닐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애초에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의 책임질 일을 만들었다면 그 무게가 짓눌릴 정도로 무겁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다 자기가 만든 일이라고 가소롭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한 게 아니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는 ‘나만’ 생각했다. 내가 잘하면, 내가 실수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일을 벌이지만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 책임질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 잘하면.
근데 어느 순간 내가 한 게 아니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령 보호자가 아프다거나 내가 책임자 거나.
처음에는 억울했다. 내가 왜 해야 되지? 내가 왜?
계속 “내가 왜?”가 떠올랐다. 아니 내가 한 게 아닌데 왜 내가 해야 하는 거지? 이건 나도 몰랐던 일인데 왜 내가 수습해야 하는 거지?
좀 억울함과 답답함과 짜증이 올라왔다. 난 애초에 어떤 일이든 책임지기가 싫어서 그런 일을 안 만드는데 이게 나만 안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없고, 내가 한 게 아니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때부터 조금 알게 되었다. ‘지금 이런 순간이 앞으로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겠구나. 내가 하지 않아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앞으로 얼마든지 오겠구나.’
그래서 그 후로 ‘책임’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책임. 내가 얼마큼 져야 하며, 얼마나 쥘 수 있는지.
난 아직도 아니 단 한 번도 ‘책임’이 가볍다 생각한 적이 없다. 나에게는 ‘책임’이 늘 무거웠다. 그래서 “내가 책임질게”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얼마 큼의 책임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기도 했고 가벼운 말 한마디로 인하여 후폭풍이 얼마큼 다가올지 두렵기 때문에.
그래서 아예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고, 내가 아니었음 싶었다. 어쩌면 책임회피일 수도 있고, 책임전가 일수도 있다. 남에게 피해 주는 건 싫지만 내가 안고 가는 것도 싫으니까.
그리고 가끔은 내가 만든 책임에 내가 짓눌러 무거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책임을 나눠 짊어졌으면 하는 기대를 거 졌고 상대방에게 부담을 준 적도 있었다. 책임을 오롯이 지다가도 떠넘기기도 싶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도 싶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이렇게 살 수도 없는 버릇.
이참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한 게 아니어도, 내 일이 아니어도, 나도 몰랐던 것이라도 나는 나를 위해서 책임지기로 했다. 꽃에 물을 주듯 나는 나에게 책임을 다하기로 했다.
책임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
어떤 날은 과거의 내가 벌린 일에 대한 책임이 한꺼번에 몰려와 감당하기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책임지는 것, 누구 때문이 아닌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것. 나는 그것을 위해서 책임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