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과 이기적인 그 사이
나는 어릴 때 줏대가 없었다.
자기주장, 소신, 주관 뭐 이런 단어들과 아예 정반대였는데 그때는 내성적인 성격도 한몫했다. 괜히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되면 이목이 집중될 게 뻔하니 있는 듯 없는 듯한 듯 안 한 듯 있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같은 반이었는지도 모르는 친구들도 꽤 있었을 정도였지만.
그래사 그때의 나는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아무거나”였다. “아무거나”를 남발했던 어릴 때는 상대방이 하고 싶은 거 있을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아쉬워하는 게 보기 싫어서 했던 말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하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어도 “다 좋은데? 너 하고 싶은 거 해. 뭐 할래?” 로 계속 되물었었다. 그러면 자기 주관이 뚜렷한 친구는 바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만 나와 비슷한 친구는 계속 “뭐 하지 뭐 하지?” 하면서 서로 빙빙 돌다 겨우 정하곤 했다.
나의 이런 모습에 “너 참 우유부단하다”라고 하며 속 답답해하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애가 말도 없고 숫기도 없어서 실수할 만한 거리가 없지만 그만큼 주관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팔랑귀라고 하기에도 처음에 자기가 선택한 게 있어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바꾸는 건데 나는 애초에 내 선택조차 없으니 그냥 바로 따라가는 거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르는 쪽으로.
눈에 띄는 것도 싫고, 유별나다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고 그냥 무난하고 조용하게 있고 싶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시선이 집중되는 게 싫었다. 다들 자기랑 다른 선택을 하면 의아해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느니 많은 사람에게 묻혀 소수를 보는 게 훨씬 나았다. 다행히도 그때의 나는 다른 사람의 선택에 따른 것에 후회가 없었다.
그렇게 인생의 절반을 지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주장이 강해지면서 확고해졌다.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더니 아예 내 사고의 전제가 ‘내 생각이 맞고 내 말이 옳아 ‘가 박혀버렸다. 그렇다고 대놓고 “아니? 네 말은 틀렸어.”라고는 말 안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그 생각을 하게 되면서 흐릿하던 내 생각이 너무나 뚜렷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말로는 아니라 하지만 이미 내 주장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고, 어릴 때와는 반대로 주변 사람들이 “고집”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우유부단과 고집. 완전 정반대인 단어가 어릴 때의 나, 지금의 내가 들었던 단어들로 어릴 때는 지독히도 속을 답답하게 했으니 이제는 지독히 고집을 부릴 차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