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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 그거 해서 뭐 할 건데?

뭐 하긴 재미있잖아

by 별난애

나는 어릴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일을 참 좋아했다.


내 기억의 첫 시작인 초등학교 때는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이 태권도 아니면 피아노 학원을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태권도랑 피아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거였고 태권도와 피아노 이외의 선택지도, 학원을 안 다니는 방법도 없었다. 무조건

태권도와 피아노 이 둘 중에 골라야만 했다.


첫 번째, 피아노

나는 태권도와 피아노 중 당연 피아노였다.

관심이 있어서, 재미있어 보여서, 해보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움직이는 게 싫었다. 둘 다 해본 적도 없었지만 어떨까 상상만 해봐도 태권도는 발차기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걸 테고 피아노는 앉아서 건반 치는 게 다일 것이니 움직이는 게 싫었던 나로서는 당연한 피아노였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신기하게도 피아노를 치는 친구들의 대다수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태권도를 다니는 친구들은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렇다. 나 또한 조용하고 차분한 편이었다. 말 수도

없었고, 낯가림도 심했고, 운동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누가 봐도 피아노였다.

그렇게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니면서

재미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해야 하니 하는 딱 그 정도였다.

그래서 굳이 그만둘 이유도, 딱히 그만두지 않을 이유도 없어서 꽤 오래 다녔었던 것 같다. 그때 내가 다녔던 학원만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노와 미술을 같이 했었는데 한날 앞치마를 매고 물통과 붓, 도화지로 멋진 그림을 그리는 언니들이 신기했고 그게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피아노에서 미술로 갈아타게 되었다. 같은 층에서 같이 하는 거라 교육비가 같았고 대외적으로는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것처럼 보여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한 게 아닌데 그때는

태권도, 피아노가 아닌 학원을 다니는 게 특이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두 번째, 미술

그렇게 몇 년을 피아노를 했음에도 재미라는 것을

못 느꼈는데 미술로 바꾸고 나서의 첫 그림 그리기

수업이 너무 재밌었다. 2시간 수업이 30분처럼

느껴졌고 너무 재미있다 못해 아쉬워서 집에서도 연필, 색연필, 크레파스, 물감 온갖 그릴 수 있는 것들을

다 가져와 내 머릿속에 있는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못 그리든 잘 그리든 그런 거 상관없이 그리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고 너무 재미있어서 미칠 정도

까지였다.

(그때는 ‘카타르시스’라는 단어를 흔히 쓰는 시대가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정도로 깊이 빠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리는 도구에 따라 질감이 달라지는 것도, 그리는

형태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것도, 그리는 방법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도. 매일매일 그리고 싶은

장면들이 떠올랐고 매일매일 그렸다. 그렇게 처음으로 깊이 있게 좋아한 게 미술이었다.


세 번째, 글쓰기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 때는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 계기는 그때 당시 재미있게 본 드라마의 원작 소설 때문이었다. 드라마보다 원작 소설로 먼저 접한 이들이 ‘드라마가 소설을 못 따라간다, 원작이 더 재미있었다’라는 말에 얼마나 더 재미있는지, 드라마와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해당 소설은 약 400페이지가 넘는 시리즈권으로 글이라면 질색하고 교과서에 실린 단 몇 줄의 글도 읽기 힘든 나로서

400페이지가 되는, 심지어 시리즈권을? 그 당시에는 고난과 역경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부분에서 더 재미를 느꼈는지 알고 싶어 일단 한 권이 아닌 단 몇 줄만 읽어보자 하며 펼쳤던 소설을 단 며칠 만에 시리즈까지 완독 해버리는 지경을 맞이해 버렸다. 글이 이렇게 술술 읽히고 재미있었던

거였는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보고

있는 건 문자(글) 일뿐인데 그 상황과 감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슬퍼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사실에 글이

영상보다 더 입체적인 느낌이 들어 소름도 돋았다.

그렇게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 또 미친 듯이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시를 써보기도 하고 대본을 써보기도 했다.


네 번째, 기타
다섯 번째, 뜨개질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을 땐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해볼 거라는 의지가 한껏 치솟았다. 어떤 것을 해보지 생각하다가 예전에 생일선물로 받았던 기타를 꺼내 들어 무작정 학원을 등록했다. 기초인 코드와 연주법을 배우며 노래 한 곡 연주하기를 목표로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에는 손가락에 쥐도 나고 기타 줄을 누를 때마다 아프기도 했지만 계속하다 보니 굳은살이 생겨 아프지 않았고 코드도 책이나 손 위치를 보지 않고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코드를 익히고 기타 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갑자기 뜨개질이나 DIY, 리폼에 관심이 생겨 또 바로 목도리나 모자를 미친 듯이 뜨고, 안 입는 바지나 옷으로 방석 커버나 동전지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뜨개질로 막 만들어내다가 한창 다꾸(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이 돌아 각종 다이어리, 도구, 스티커 등을 죄다 모으기 시작했다.


여섯 번째, 다이어리 꾸미기

먹을 때만 돈 쓰던 내가 돈을 아껴서 스티커 사고 새로운 계정을 만들어 소셜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다꾸체험단 및 서포터즈로서 활동도 하고, 서일페 참석도 하며 다이어리 꾸미기에 미쳤었다. 하루종일 단풍손으로 스티커만 만지작만지작. 앉았던 그 자리에서 일 년 치를 다 꾸미다 못해 쉬는 날을 빈칸으로 놔두기 싫어서 일부러 적을 거리를 만들기 위해 밖을 나간 적도 있었다.


다시, 피아노

그렇게 미칠 듯이 하니 이번에는 하다못해 피아노에 눈길이 갔다. 어릴 때 그렇게 몇 년을 다녀도 재미를 못 느꼈던 피아노였는데 어느새 어릴 적 콩쿠르에 나가서 연주했던 피아노곡을 다시 연주하고 있었다.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한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였다.

그 후로도 제빵, 캘리그래피, 비즈, 네일, 교육 멘토링, 필사 등에 관심이 가 한창 또 미친 듯이 빠져 만들고 하곤 했었다.


그리고 현재


그리고 현재, 유일하게 아무 곳에도 관심이 없는 무료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많이 해보고, 다 해봐서가 아니다. 내가 해본 것들은 아직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의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정도로 수없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그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그거 해서 뭐 할 건데?‘라는 생각이 관심을 덮게 만들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한창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기타를 치고, 뜨개질을 뜨고, 다꾸를 하고, 피아노를 쳤을 때 주변에서 수 없이 들었던 말이 ‘그거 해서 뭐 할 건데?’라는 말이었다. 그때는 별 생각이 없어서 ‘뭐 하긴, 재미있잖아’라며 가볍게 넘겼고, 어떤 것을 하고 있다가도 다른 것에 재미가 보이면 바로 바꾸어해 보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거 해서 뭐 할 건데?’라는 말이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그거’가 중요했는데 이제는 ‘뭐’가 중요해졌다. 아니 더 정확히는 ‘뭐’가 중요하다고 했다. 성인이 된 지는 꽤 되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업을 가지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하기에 예전처럼 재미로 움직이면 ‘철이 없다고, 세상 누가 재미로 사냐고, 다들 할 수 없이 사는 거지’라고 하였고 이에 나도 같은 생각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재미’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재미가 아닌 ‘뭐’를 해야 할지 생각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았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하고 있는 게 없었다. 과거 어느 하나에 몰두했던 그 시절에는 그 하나를 잘했던 그때의 나였고 지금의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때 했던 것들을 지금도 할 수 있지만 좋아했고 잘했던 건 그때로 충분해서 다시 되돌아가서 할 마음도 없었고 그때만큼 즐겁게 할 자신도 없었다.


‘뭐’를 하는 것은
재미를 찾는 일

나는 ‘다른’ 것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거기에 몰입하는 나를 찾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안 해 멈춰있다고 느꼈고 일단 어떻게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움직이게 하는 방법, 그것이 나에게 ‘재미’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가 될지 찾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 결국 ‘재미’를 찾는 일이었다.


나는 해본 것도 많고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다.

이 말이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사실이 좋고 그렇게 만든 게 나라서 좋다. (누군가는 나와 반대로 하나에 몰두해 깊게 아는 것을 좋아하겠지.)

그래서 나는 ‘뭐’가 되지 못한 후회가 없다. 애초에 무엇이 되려고 한 게 아니기 때문에.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하고 싶다’의 마음이지 ‘되고 싶다’의 목표가 아니어서. 나에게 ‘하고 싶다’는 어쨌든 ’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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