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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 사귀자와 헤어지자의 차이

나는 ‘이제’ 그 사람을 사랑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by 별난애

갑작스러웠던
이별 통보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랑한다던 사람이

갑자기 헤어지자고 통보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는

외국 언어를 듣는 것처럼 무슨 말인가 해석이 안되었다. 그 이유는 그때 우리는 그동안 아니 사귄 이후로 싸운 적도, 쌓인 것도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헤어질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서로 숨기는 거 하나 없이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보여줬고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어 혹은 이런 점이 서운했고 저런 건 안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들도 한 번도 한 적 없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생각도 비슷하고 추구하는 방향도 같아 대화도 잘 통하고 잘 맞는다고 느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내가 바라왔던 이상적인 모습이었고 그 사람 옆에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대체 언제부터 나의 어떤 것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한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알고 싶었다. 하지만 헤어지자 말한 후 이어진 그 사람의 말들은

이미 귀에 들리지가 않았고 겨우 귀에 닿았던 마지막 말은 ‘미안해’였다. 바람도, 환승도, 잠수도 아닌 그냥 이별이었다.


차임의 바닥

타당하지 않아서 받아들일 수 없던 이별은 나를 처참히 망가뜨렸다. 이제 나 안 사랑해?라는 말로 시작해 그럼에도 사랑해 달라는 말, 옆에만 있게 해 달라는 말, 한 번만 안아달라는 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속으로 ‘설마 이런 말, 이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겠지?’ 하는 말까지 다. ‘에잇, 설마...‘ 하는 그 생각까지도. ’ 그럴 리가‘하는 것도 전부 다. 그래서 헤어지는 게 연인으로서는 끝이었지만 정말 관계의 끝은 아니었다. 헤어진 후의 일어난 별의별 일은 사귈 때보다 더

길었고 더 많았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있었고 그 정신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별의별 일의 목적은 다시 사귀자였다. 나는 재결합을 원했고 그 사람 입에서 ‘사귀자’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여기서도 별의별 짓을

했다. 할 만큼 해야 미련이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별의별 짓을 하고 별의별 일을 만들다 정말 관계가

끝나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깨달았다.


사귀자, 그 한마디가 뭐라고.


사귀자, 헤어지자.

이 한마디로 변하는 건 우리의 관계일 뿐이었지

내가 아니었는데.

이 한마디는 그저 말뿐이었는데.


그 사람을 사랑하는 역할

사귀자로 내가 가진 건 그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을 나도 사랑하는 역할. 우리는 태어나면 자식의 역할을 가지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학생의 역할을 가진다. 이는

동시적으로도 가질 수 있다.


이런 관계적인 역할은 주고, 받아야 생긴다.

그 사람이 건넸을 때 내가 받고, 혹은 내가 건넸을 때 그 사람이 받아야 만들어진다. (반대로 그 사람이

건넸을 때 내가 안 받거나 혹은 내가 건넸을 때 그 사람이 받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그럼 다시 생각하면

그 사람이 내게 주지 않으면 나는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계는 내가 부여받는 역할이 더해지는 것이고 모든 역할에는 책임이 있으며 소속을 만들어준다. 특히 이성적인 사랑으로 만들어진 역할은 주변 지인이나 친구보다 우선이라는 조건을 가져 빨리 최측근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이 우선적인 조건은 나의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도, 내가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의미도 아닌 그저 전제 조건이다. 수학문제에

맨 끝에 (단, 무엇은 이것이다)와 같은 것처럼. 그래서 혹시 자기를 누구의 여자친구, 남자친구라는 사실에 우월감으로 취해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

사람이 준 것을 내가 받았을 뿐이니까. 나에게 준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고, 그 대단한 사람한테 받는 것을 특별히 여겨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 역할이 없어지는 순간 자기도 없어질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역할 하나만 없어지면 되는 것을 그 외 많은 역할을 가지고 있던 나까지 없어지게 될 테니까.


역할에 ‘원래’는 없고
‘이제는’ 아니다

헤어진다는 건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이 주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뜻이다. 내가 해봤다

할지언정 아무리 그 역할을 하고 싶다 말한들 애초에 주지 않으면 못한다. 그래서 ‘원래 내 역할이었어.‘

라도 해도 역할에는 ’ 원래‘라는 게 없고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헤어진다는 건, 이제는 너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


잊지 말자, 역할 하나가 없었을 뿐이고

이제는 너의 역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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