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된 건 내 덕분이 아니고 안된 것도 내 탓은 아니다
소개
내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자연스레 남자친구의 지인을 알게 되었다. 한날 셋이서 가볍게 밥 한 끼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지인 분께서 솔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넌지시 소개를 부탁하시길래 한번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 주변 사람들은 다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지인 분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았고,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고 무산되는 것보다 처음부터 에둘러 거절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절을 하려고 할 때쯤 내 친구들 중 한 명이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말에 불현듯 지인분이 떠올랐다. 그래서 친구에게 나이와 직업,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점까지 더해 지인분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아는 건 이 정도인데 너랑 맞을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한번 연락해 볼래?”라고 말했다. 내 친구는 듣고 고민하더니 일단 연락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남자친구의 지인분과 내 친구에게 각자의 번호를 넘겨주었다. 그 후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아니면 실제로 봤는지는 사생활이라고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겹지인의 연애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났을 때쯤,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때 그렇게 연락하다 사귀게 되었고, 지금도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나는 이렇게 소개해준 게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고, 내가 아는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이상했다. (혈육이 내 앞에서 애정 행각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내 친구가 말하길 남자친구(내 남자친구의 지인)는 자기랑 정반대인 사람이라고 했다. 생활패턴이든 성향이든 가치관이든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데 제삼자인 내가 들었을 때도 안 맞는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기를 좋아해 주고 맞춰주려고 하는 게 느껴져 고맙고, 만나면 재밌다고 해서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 사이 헤어지게 되었다. 내가 남자친구를 통해서 지인분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내 기준에선 내 친구와 연인이라는 관계가 남아있었다. 나는 괜히 그 둘 사이를 어색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내 친구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내가 헤어짐으로써 셋의 관계가 애매해져 버렸다.
내가 헤어진 후 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듯했다. 전에는 그래도 고맙고 만나면 좋은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이해보다 자포자기에 가까운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었다. 안 맞음의 차이가 힘듦의 이유였다.
소개해준 내 탓
친구가 한탄을 하다 ”안 맞아서 힘들 때 가끔 왜 나한테 소개해줬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라고 던지듯 말했다. 사실 난 이전부터 살짝 느끼고 있었다. 자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나를 보는 눈빛이나 말투에서 ‘혹시 지금 나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때는 기분 탓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생각이 역시나로 바뀌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내가 잘해보라고 부추긴 것도 아니고, 잘됐으면 좋겠다고 부담을 준 것도 아니고, 사귀라고 강요를 한 적도 없었다. 나는 번호를 교환하기 전 충분히 의사를 물어봤다고 생각했고, 번호를 교환해 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고 지켜야 하는 건 연결해 주는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내 친구의 입장에서는 애초에 이런 사람 있다고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하여 지인을 소개해준 것뿐이고 거절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그때 거절하지”라고 넘기듯 이야기했는데 내 친구는 “그래, 내 잘못이지. 다 내 탓이야.”라고 대답하였다. 이 문제로 싸우진 않았지만 이미 서로 감정이 상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그 지인인 건데 그 화살이 왜 나한테 왔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반대로 그 지인과 잘 맞는다고 해서 내 덕분이 아닌 것처럼.
이런 상황이 생기니 중간에 남자가 있으면 잘 지내던 친구와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겠다는 말, 겹지인끼리는 소개 안 하는 게 맞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나와 잘 맞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이런 걸로 감정이 상하게 되니까 ‘우정도 특별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계기로 다시는 겹지인을 소개해주는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