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 옆에 네가 없는, 내가 견딜 수 없어서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나 기억이 날듯 말 듯 하지만 그 당시 적었던 일기를 들여다보면, 그리고 내가 겪었던 상황이 다른 이에게 투영되어 보일 때 그때의 상황과 감정이 확 와닿곤 한다. 잊고 있었던 그때가 누군가로 인해 생각나 몇 자 적어보려 한다. 그를 위해, 그리고 나의 다음 이별을 위해.
네 옆에 내가
없어서 걱정돼
당시 한창 이별의 전후로 내가 했던 생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네 옆에 내가 없을, 네가 걱정이 된다.’는 생각.
그때 당시 나는 아직 그를 좋아하고 있어서 그의 입장에서 쉽게 이입이 되었는데 내가 느낀 건 ‘내 옆에 아무도 없어서 외로운데 너라도 있어주면 좋겠다’였다. 그를 알게 되었을 때 주변에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그 후로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관계가 발전하면서 그러한 감정이 더욱 깊어진 것 같다. 서로를 사랑하는 동시에 그동안 쌓여왔던 상처를 꺼내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받았다.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는 단단한 관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관계. 그러다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관계.
그리고, 그런 우리가 이제는 각자가 된 관계.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어렵게 연만큼 있는 대로 다 주어도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후회를 할 만큼 내 마음에 크게 자리 잡고 있던 네가, 늘 내 옆에 있단 네가 한순간에 없어지니 허전했고 외로웠다. 내가 지금 너의 부재를 느끼는 것만큼 너도 나의 부재를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보다 더 아파할 사람인데.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너무 걱정되었다. 힘들어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밥도 못 먹고 있으면 어떡하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등 걱정에 눈이 멀어버렸다. 눈앞에 네가 보여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이별한 후의 관계
사실 이별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한순간에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전부터 마음이 떨어지고 있는 거면 몰라도 이별한 딱 그 순간부터 그동안의 감정이 말끔히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별 후에 미련과 후회, 그리움과 후련함이 서로 부딪히면서 감정의 혼란스러움이 찾아온다. 어느 날에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가 또 어느 날에는 연락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가 어느 날엔 반대로 연락을 해볼까 싶기도 했다. 내 안의 감정이 막 요동치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정신을 논 사람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그리움과 외로움, 걱정이 맞물리면 결국 연락을 하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면 집 앞까지 가버린 나 자신을 발견한다.
쓸데없는 걱정
대단한 착각
간 이유는 ‘나보다 더 괴로워하고 있을 네가 걱정돼서.‘
너를 잘 아는 나니까. 내가 아는 너는 분명 아파하고 있을 테고, 힘들어하고 있을 테니까, 헤어졌더라도 한때 제일 가까웠던 사람으로서 잠시 옆에 있어줄 수는 있으니까라며 나는 너의 집 앞에서 너를 걱정하였고 그렇게 해서 본 너는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나왔다. 힘들어할까 봐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괜찮은 거면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왜 괜찮지?
서운하면서 섭섭하면서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한 걱정은 너를 위한 게 아니라 ‘너를 핑계삼은 나에 대한 걱정’이었다는 걸. 내가 너를 생각하는 만큼 너도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네가 없어서 내가 힘든 만큼 너도 힘들어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의 이별을 후회하고 있는 것만큼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등 다 ‘내가 너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큼 너도 이만큼 느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고, 모든 게 나의 착각이었다는 게 느껴지니 이제야 보였다.
우리의 관계를 포기한 건 너였다는 걸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이별을 생각한 순간부터 내가 없어도 된다는 거였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네 옆에 있어주려 한 내가 너무나 낯뜨거웠다. 내 마음을 너로 핑계 삼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