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그제야 버릴 수 있게 된 미련
재회
뜬금없는 이별통보에 나는 당황했고,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다급한 나머지 열심히 매달려버렸다. 만나서 이야기하자고도 하고,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설득을 하기도 했다. 헤어지는 이유를 찾으면 ‘재회’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변에서는 재회하지 말라고 하고, 나 또한 안 할 거라 했지만 말처럼 마음이 쉽게 따라주지는 않았다. 속으로 계속 ‘아닌데? 아닌데?’를 외치며 무조건 ‘재회’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한번 깨진 접시는 다시 붙일 수 없다는 말에
왜 붙일 수 없어? 어떻게든 붙이면 되지
깨지지 않은 접시랑 똑같지는 않아도 잘 붙이면 다시 사용가능 하잖아라고 답했고.
그렇게 해서 재회한 커플은 같은 이유로 언젠가 헤어진다는 말에 재회한 커플뿐만 아니라 한 번도 헤어지지 않은 커플도 헤어질 수 있는데 왜 재회한 커플만 헤어진다고 단언해? 다시 재회해서 잘 사귀는 커플들도 있고 결혼한 부부도 있는데 왜 재회는 절대 아니라고만 해?라고 반박했고.
사람은 안 바뀐다는 말에
그래, 사람이 바뀌긴 쉽지 않지. 근데 천천히는 바뀔 수 있잖아. 서로 노력하면. 무엇보다 난 그렇게 해줄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그 사람이어야만 이유가 있었다.
뜬금없이 헤어지자 통보해도, 이제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다시는 연락하지도 말라고 해도 말이다.
미련의 시간
입 밖으로 차마 꺼낼 수 없을 정도의 못된 행동을 당하고, 모진 말들을 들어도 보고 싶었고, 재회하고 싶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던 어느 날, 문득 ‘나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이미 떠나갔고, 나라는 사람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을 텐데 나만 아직도 과거에 묶여 그리워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앞으로 절대, 어떻게 서든 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볼 방법도 없고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참 웃긴 말이었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모순적인)
그러고 시간이 또 꽤 지나니 왜 그렇게까지 매달렸다 싶었다. 무엇이 좋다고, 무엇을 원해서 그렇게까지 했을까. 다 내가 만든 이상일 뿐이고 기대였을 뿐이었는데 - 어렴풋이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다시 한번 나를 향한 마음이 남아있다고 했던 때를 생각해 보니 어이없게 안중에도 없는 듯이 대했던 그의 행동이 이제야 보였다.
헤어지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우연하게 그가 아팠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미련이 가득 남아있던 상태라 도저히 모른 척할 수 없어 약이랑 선물로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현해 버렸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앞으로 이러지 말라는 한 줄의 답장뿐이었고,
반대로 아픈 적이 거의 없던 내가 헤어지고 나서 응급실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연락 한 번이 없던 것. 헤어지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지만 헤어진 지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도 가능한 일인가, 헤어진 사이에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란 건가, 마음이 남아있다면서?
그리고 그럼에도 마음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헤어질 당시 나보다도 더 슬퍼했고 더 많이 운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사정이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으나 이제 와서야 보니 그동안 내가 본 것과 들은 것들에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정 같은 건 없었고 그냥 그럴싸해 보이는 껍데기 같은 핑계였다.
처음 미련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다시 놀아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제일 컸다. 다시 내팽개치고 싶지 않은 마음. 만약 재회를 하게 된다 하더라도 내가 버려질 것 같아서,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비참해질 것 같아서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그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기보다 나를 위해서 참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헤어지고
그에게서 온 연락
그리고, 그 후 몇 개월 뒤 그에게서 실제로 연락이 왔다. 연락오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이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기다리긴 했지만 내가 아는 그는 절대로 먼저 연락할 사람이 아니어서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전화번호가 있어야 하고, 할 말을 생각해야 하고, 보낸다는 행동까지 해야 닿는데 그 과정을 했다는 게 놀라워서. 연락이 오길 바랐던 이유는 조금이라도 내 생각을 해줬으면 했다. 문득 혹은 잠깐이라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주길 바랐고, 그때를 후회했음 했다. 그래서 간절히 기다렸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기다렸는데 막상 연락을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보낸 내용에는 미안하다, 후회한다는 내용이 없었을뿐더러 연락하면 당연히 답장할 거라는 확신과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한 게 느껴졌기 때문에. 전체 보기로 넘어갈 만큼 장문이었지만 단체문자 보내듯 형식적인 내용들로 가득해서 전혀 동요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벽이었다. 저녁도, 밤도, 이른 새벽도 아닌 야심한 시간. 어떤 마음으로 연락을 했을지 느껴져서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미련
답장도 물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읽고서는 그 문자를 삭제했다. 그동안 기다렸고 왔으니 충분했다. 이제 끝이다. 끝, 일까?
뭔가 이대로 끝나긴 아쉬웠다. 그동안 기다린 것에 비해 너무 가볍게 끝나버려서. 그때의 나처럼 애가 타고, 기다리게 하고 싶었다. 이건 나의 끈질긴 미련일 수도 있지만 차단하고 단번에 끝내는 것보다 차단하지 않으면서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애가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단하지 않았다. (사실 핑계. 한 번 더 연락이 오길 바랐다)
장문의 문자를 어떤 마음으로 보냈을지 짐작이 가 두 번은 없을 거란 확신도 있었다. 그래서 차단하나 마나라고 생각했고 잊었다. 그런데 그 후 또 연락이 왔다. (이 정도면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가 뭐 할 정도로) 또다시, 새벽. 쌓인 업무들로 지쳐 이 날만큼은 잠만 자자고 했던 그날, 하필 겨우 막 잠에 하려고 할 때 전화벨이 울렸고 잠결에 누군가 하고 본 순간 모르는 번호였지만 직감적으로 그 사람임을 확신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번호. 나는 이 또한 거절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신을 차렸을 즈음 부재중을 확인했다. 왜 전화를 했을까?
나는 또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모를 거다, 내가 아직까지도 기다리고 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진짜로 그만두기로 했다. 미련도, 나를 외롭게 두는 것도. 이제야 놓는다. 이 글이 너를 향한 마지막 미련이고,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