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주는 사랑은, 타인이 주는 사랑과는 다르기에
나는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아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애초에 줄 생각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기에 받을 거라는 생각은 일치감치 버렸고 대신에 그 사랑을 나 스스로 주고받기로 했다.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괜찮다 토닥여주고, 스스로 응원해 준다면 굳이 부모에게 받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다행히 지금까지도 부모의 빈자리 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문득 부모와 사이좋은, 부모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자책하거나 연민을 느끼며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에 빠지는 순간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될 테니까.
물론,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까지 수없이 자책하기도, 억울하기도, 화나기도 했었다. 내가 이런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왜 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를 등 돌렸다는 비난과 책임을 받아야 하며 남들은 쉽게 누리는 것을 나는 누리지 못하는지 - 세상에 나를 지켜줄 사람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도 한 명도 없고, 이렇게 생긴 혹은 이런 성격인 내가 싫고 앞으로의 미래도 뻔할 것 같아 이렇게 살 바에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을 정도로 싫을 때가 있었다. 그렇게 불평하고 투덜댄들 바뀌지 않으니 그냥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이 한 줄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외에도 ‘그래서 어쩔 건데?’를 외치며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긴 어째 -
바꾸고 싶으면 바꾸고 아니면 어쩔 수 없지 뭐.
예를 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외적인 부분이라면 운동이나 패션 등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노력으로 바꿔버렸고 그와 반대로 부모나 태생적인 성질같이 바꿀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빨리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다행히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나에게 부모의 사랑 없이도 사는, 내가 나를 보호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에 부딪히기 전까진.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 혹은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일,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하는 일이 기적이라 할 만큼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늘 불안과 두려움에 앞서 외면으로 끝을 맺어버리곤 한다. 그러고는 후회하고, 외로움을 느끼고 또다시 사랑을 갈망한다. 분명 예전보다 자기혐오가 낮아지고 자존감도 높아졌지만 사랑 앞에서는 연약한 존재, 무서우면 도망가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나는 생각해 봤다. 왜 이럴까?
나는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도 않고,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이 유일할 거란 생각도 안 하고, 언젠가 떠나갈 거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몇 번의 연애로 이제는 집착하지도,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럼 뭐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나였다. 나 때문이다.
그동안 부모의 사랑 없이 혼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힘들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참고, 견디고, 괜히 아닌 척하며 괜찮다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힘든 날엔 울부짖듯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감정을 쌓아두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어서 안 보이는 곳에서 최대한 비울 수 있을 만큼 비워내려 해서 생각도 일부러 안 했다. 복잡하게 사는 것보단 바보같이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나는 살아간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은 나밖에 없다. 그래서 무너지면 안 된다. 사랑이든 일이든. 내가 무너지면, 나를 일으켜줄 사람이 없고 나는 나를 찾기 위해 또 헤맬 것이다. 언제 찾을지도 모르는 나를.
그래서 불안하다. 내가 별 거 아닌 것에 내가 무너질까 봐. 내가 나를 또다시 못 찾게 될까 봐 두렵다.
내가 나에게 사랑을 주기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다들 느껴지나 보다. 내가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다는 게. 내가 혼자서 애쓰고 있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