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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나영 Nov 14. 2021

장례식 가는 날

초청되는 이와 초청하는 이


초청되는 이
30대 직장인 민희(가명) 씨




늦은 밤, 톡이 뜬다. 부고 톡이다. 100명 이상이 초청된 단체 방이다. 망자와 친하게 지낸 선배가 개설한 것 같다. 


"아. 그 친구 아팠었나? 건강해 보였는데.. 팀장 하면서, 박사까지 들어가더니 이게 무슨 일이지? 애가 하나, 아니 둘 있다고 하지 않았었나?"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참... 좀 더 잘 해줄 걸... 참... 이게 무슨 일이지? 이런"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그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연이은 메시지들에 나도 안 쓰면 안 될 것 같아, 일단 멘트 하나 쏜다. 맘이 먹먹하다.


그런데, 사업계획서 마감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도 밤샐 판이다. 바쁘다. 장례식장 안 가면 안 될까? 동료에게 부조금만 넣어 달라 할까? 직접 메시지 보내고, 송금할까? 가능한 옵션을 쭉 돌려본다. 그러다, 결국 장례식장에 가기로 맘먹는다. 뜻밖의 스케줄이 튀어나온 탓에, 전화 몇 통 돌려야 하고, 내일 조금 더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할 관계다.




아침에 평소 스타일보다 점잖지만, 그렇다고 후지지 않은 검정 수트를 꺼내 입었다. 출근해서 차 막히기 전에 움직이려고 일을 서두른다. 병원 주차장에 주차해서는, 차 안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지우고, 화장 톤을 낮춰본다. 뭐, 보기에 나쁘지 않다. 귀걸이는 빼지만, 굳이 시계나 팔찌까지 빼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 그냥 차기로 한다.


보통 장례식장 1층에는 ATM기가 있으니, 불편하게 은행 갈 필요도 없다. 손쉽게 돈을 인출하여 의례 그러했듯, 내가 왔다 갔음을 알리기 위해 부조금 봉투에 소속과 이름을 적은 후. 장례식장 입구에 놓인 박스에 최대한 정중히 넣는다. 식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족에게 전할 위로의 멘트 하나는 마련해 놓는다.


들어간다. 난 헌화만 하는데... 혹시 분향도 해야 할까? 아님 둘 다 할까? 고민한다. 매번 그렇다. 그러다 결국 헌화만 한다. 기도인지 묵념인지, 그 비스므레 한 것을 하기 위해 눈을 감는다. 처음엔 생각이 잠시 멈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 고인께 축복이 가득하기를, 좋은 곳으로 가서 편안히 쉬시기를 기원한다. 평소에는 신이 존재하는지 의식하지도, 의식되지도 않지만, 이날만큼은 왠지 신이 이 분과 함께 있어야만 할 것 같아, 애써 소환시킨다.


상주에게 최대한 안타까운 표정으로 애도를 표한다. 그런 표정을 지어서 슬픈 것인지, 슬퍼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것인지, 매번 다르지만, 결국 맘이 무겁고, 슬픈 건 매한가지다.


지인들과 앉아 종이가 깔린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네, 마네.", "차 가져왔냐? 술 한잔 해라, 마라." 가볍게 실랑이한 후, 원래 관심 있었다는 듯이, 망자의 사인을 서로 묻고 답한다. "이렇게 큰 자식들이 있는 줄 몰랐다.", "형제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 "가족들이 서로 닮았네. 아니, 안 닮았네.."와 같은 답 없는 토론도 이어간다.


그러다, 테이블에서의 주제는,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테이블에 함께 앉은 나를 포함한 이들의 최근 관심사와 근황으로 옮겨간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를 보며 "참 멋있어졌네. 사업 성공했다더니. 나도 좀 바꿔 봐야 하나."란 부러움도 잠시 느꼈다가, 승진이 누락되어 기죽어 있는 친구를 보며, "안됐네. 난 얼마나 다행이야." 라며 내 처지에 대한 감사로 끝나 버린다.

 

이러다, 새롭게 테이블에 조인하는 몇몇에게 "너무 반갑다."는 인사와 "잘 지내지? 어떻게 지냈어?"란 질문 몇 번 던지다 보면, 어느새 육개장 한 그릇이 비워져 있다.


그럼,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온갖 떠드는 소리들 속에도, 난 "일 하러 다시 사무실에 갈까?", 아님 "운동하고, 집에 가서 할까?", 아님 "이왕 이렇게 된 거, 집 앞 자주 가는 바에 가서 친구와 칵테일 한잔 할까?" 혼자 바쁘게 머리를 굴리고 있다.


내 앞에 100명 남짓한 사람들이 나처럼 진중하게 앉아 있다. 과연 이들 중 몇 명이 나와 다를 것인가? 과연 몇 명이나 지금 이 순간, 온 맘과 정성을 다해,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고 그리고 하고 있는 것일까?


뜬금없이 이게 궁금하다. 물론, 답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장례식장에 지금의 나 같은 사람들이 와서 가득 채우진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죽음이 멀게 만 느껴졌을 30대 직장인 민희 씨의 이야기입니다. 그 순간 저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란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초청하는 이
나 셀라


저는 맘먹었습니다. 제 장례식은 제가 미리 준비하기로요. RSVP 리스트, 틀 노래, F&B 플랜도 생각해보고, 그들이 즐길 거리, 전달할 것들도 아이디에이션 중입니다. 물론, 수 차례 업데이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하게 오시는 분들께 소중히 대접하고 싶으니까요. 그들이 슬퍼하는 대신, 즐거워하기를 바라니까요.




cover photo ⓒ Mathew Schwart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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