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그 시간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새로운 것들과 만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신선한 공기를 마주하고, 익숙한 내 방 풍경과 조우한다. 출근길에서는 나무와 꽃, 사람들과 자동차가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만남'은 우리의 삶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 만큼 깊이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수많은 만남의 순간들에 우리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마음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만남들은, 집중할 때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처럼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기억할 만한 장면으로 남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가 버린다.
그런데 어떤 만남은 예고 없이 내 가슴속으로 불쑥 들어오곤 한다.
매일 타던 버스에서 문득 말을 걸어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길 때, 우연히 참석한 모임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혹은 스쳐 지나가듯 듣거나 보았던 노래와 영화가 마음 깊이 스며들 때. 책 속 한 문장이 내 안의 잊혔던 감각을 건드리거나, 매일 보던 사람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어떤 순간을 마주할 때다.
그것은 평평하게 흘러가고 있던 내 삶의 선에 변곡점이 생기는 순간이기도 하며, 매일 반복적으로 흘러가던 일상을 완전히 새롭게 뒤바꿔놓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만남은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만남은 내 안에 깊은 울림을 남기며 나와 공명한다. 아주 작은 진동이라도 내 마음을 흔들어 나를 변모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마주침’이라는 말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만남 속에는 계산조차 불가능할 만큼 수많은 우연들이 얽히고설켜 자리하고 있다.
우연히 참석한 독서 모임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 순간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요소들이 기막히게 맞물려 정렬된 덕분일 것이다. 내가 지금 이곳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 만남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일까? 설령 이곳에 살고 있다 해도, 내가 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독서 모임을 추천해 준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석기시대도, 청동기도, 조선 시대도 아닌 바로 이 시대,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이 순간까지 용케 살아남았으며, 독서 모임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와 신체적 건강을 가졌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우연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 우발적인 톱니바퀴들 중 하나라도 어긋났더라면 지금 이곳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이곳에 있게 한 요소들은 다시금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신체적 건강이 유지될 수 있었던 데도 내가 금연을 실천했고,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없었으며, 우발적인 범죄의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수천, 수만 가지 이유를 들어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세밀하게 쪼개어 보면, 그 각각을 이루는 또 다른 무수한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이 모든 기적 같은 조건이 맞아떨어졌더라도, 나를 떨리게 만드는 저 사람이 없었다면? 이 순간 역시 수많은 덧없는 기억의 파편으로 시간 속에 흩뿌려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저 사람 역시, 나만큼이나 무수한 우연들의 중첩을 지나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우리를 이어주고 있는 이 가교 역시 무수히 많은 우연의 산물이다. 모든 우연이 맞닿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우연들의 중심에서 서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 선택이 하나라도 달라졌다면, 우리는 여기서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들과 선택할 수 없었던 것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 사람과 나. 우연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역사. 그 두 가지의 기적이 포개질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보통 독서 모임의 시작은 어색한 대화들이 오가며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간다.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가끔 누군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들이 조용한 공간을 채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가 무르익고,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말하기 시작할 때, 공기는 팽팽해진다.
특히 누군가는 그 순간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낸다. 단순히 건조하게 무언가를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문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몰입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마치 자신의 삶에 묻어있던 언어를 발견한 것처럼.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빼곡한 활자들 사이에서 단 하나의 문장을 발견한 것처럼 선명하다. 그럴 때, 우리는 아주 미세한 진동 같은 것을 감지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지만, 어떤 만남은 그냥 스쳐 지나가고, 어떤 만남은 이전과 이후를 나눌 만큼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마주침은 그렇게 일어난다.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파장을 만들어 우리를 쥐고 흔든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내 가슴을 떨리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서 모임의 낯선 분위기나 다른 요소들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떨림의 원인이 결국 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려 ‘노력’씩이나 하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어, 수많은 우연적 조건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내가 독서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를 이곳으로 이끈 온갖 우연들 중에 단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그 만남은 애초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우연들이 한 점으로 수렴할 때, 또 그것이 내 감각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인연'이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그 사람을 중심으로 내 세계가 서서히 재배치되기 시작한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던 '우발적 마주침'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 사람이 내 기쁨의 원인이라는 것을 의식한 순간 우리는 우발적 마주침에 불과했던 그 순간을 이제는 자발적 마주침으로 바꾸고 싶어진다. 나를 또 다른 우연 속으로 던져, 그 사람과의 만남을 지속시키는 우연의 일부가 되고 싶어진다.
이 마주침이 휘발되지 않도록, 나는 나의 마음을 실질적인 행위로 개입시키기 시작한다.
우리가 시간을 체감하는 순간은 여러 가지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이전과 달라졌음을 깨달을 때, 집 밖 풍경이 계절의 변화를 드러낼 때, 책 한 권을 다 읽고 덮을 때, 손에 익은 물건이 낡아 있음을 발견할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낄 때. 시계 속 숫자가 변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때.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의 뇌는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렬한 감각으로 다가오는 순간은 내 삶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어떤 것과의 만남, 또 훌륭한 누군가와의 만남은 시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체험하게 만들어주며, 그 강렬함은 내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문신처럼 새겨진다.
우리는 이런 순간을 '운명'이라 명명하며 극적인 의미를 더하려 한다. 하지만 오히려 운명이라는 이름을 빌리지 않기에, 운명에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기에, 이 수많은 우연의 중첩이 지닌 무게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정해진 길이 아니었기에 더욱 경이롭고, 필연이 아니었기에 더 아름다운 것일 테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놓이지 않았다면 닿을 수 없었던 너와 내가, 바로 그곳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힘을 쓰고 있었을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폭풍들은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 놓았고, 그 휘몰아침은 내게 선물처럼 다가왔다.
우리의 삶은 반드시 유한하고 또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삶 속에서 영원히 간직할 기억을 선사할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 커다란 축복을 과연 어떤 언어가 다 담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