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콘서트 표를 구했다. 좋은 분께 정가 양도를 받았다. 완전히 중앙은 아니긴 하지만, 1층에다가 무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너무 친절한 분이셨다.
김동률 콘서트는 완성도 면에서 워낙 높이 평가받기 때문에, 티켓팅으로는 티켓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심지어 티켓 오픈 날짜도 잊고 있었다.
‘그냥 다음에 갈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자각한 순간부터, 오히려 적극적으로 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피곤하고 귀찮다는 핑계로 다음으로 미뤄버리면, 나는 앞으로도 내 감정을 죽이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질까봐.
아직까지 내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며,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다.
내 글을 내가 다시 읽다 보면, 마치 내가 책이나 강연만 보고 사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젠지를 응원하며 LCK나 월즈를 열심히 챙겨보기도 하고(월즈 4강전에서 어이없게 떨어져서 충격이 상당했다), 게임은 요즘 거의 안 하지만 가끔 디아블로2를 한다. 출시한 지 25년이 되어가는 게임을 아직도 하고 있다.
예전에 지나가다 최욱이라는 사람의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개그코드가 상당히 내 취향에 맞았다.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을 꼽자면, 그가 떠오른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가장 큰 힌트인데,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동시에 굉장히 스마트하다는 게 느껴진다.
하나에 꽂히면 파고드는 내 취미를 십분 발휘했다. 매불쇼는 잘 안 보지만, 정영진과 함께하는 ‘웃다가’ 채널의 모든 영상은 정주행을 마쳤다.
정영진이라는 사람은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보다 보니 굉장히 스마트하고 위트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진중해진다는 인상도 있다.
내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두 사람은 서로를 정말 아끼는 것 같다.
정영진은 자신이 만나본 사람 중 최욱이 가장 웃긴 사람이라고 말했고, 최욱은 정영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자 가장 큰 은인이라고 했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낀 그 두 사람은 서로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아무것도 없는 시기에 서로 만나서 팟캐스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승승장구해 지금은 각자의 분야에서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최욱의 매불쇼는 동접자수가 압도적이다.
그 스토리가 궁금해져 또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둘의 첫 만남 사연까지 듣게 됐다.
https://youtu.be/QAXoO4WmJSc?si=I3GN4uZY7ZuQXGB5
예전에 동료들이랑 팟캐스트를 한 번 시도해 보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뾰족한 직장이 없었으니까. 동료 세 명이 힘을 합쳐서 시작하려고 했는데, 셋 다 셋팅을 못해서 스위치를 어떻게 켜는 건지도 모르는 거야. 근데 그 멤버중 한 명이 자기가 아는 사람중에 팟캐스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게 이제 정영진이었어요.
정영진씨한테 시스템을 좀 구축해달라고 스태프로 모셨던거야.
나는 그때 살면서 처음봤지. 그래서 이제 우리가 방송하는 걸 정영진씨가 팟캐스트 세팅 도와주면서 들은거야. 그 멤버중에 당시에 아주 잘나가던 개미퍼먹어로 유명했던 개그맨 이동엽씨가 있었어요. 이동엽씨가 녹음중에 정영진씨한테 물어본거야 '아저씨 오늘 방송 어떻게 들으셨어요?' 정영진씨가 거기서 "저 오늘 굉장히 충격받았습니다. 최욱씨 때문에." 이렇게 웃긴사람 처음 봤다는 거야.
방송이 끝나고 정영진씨가 저한테 자기가 방송하고 있는 게 있는데(똑똑한 12시) 나와줄 수 있냐는 거예요. 내가 너무 귀찮은거야. 일도 없으면서. 나는 꿈이 항상 컸어요. 너무 귀찮은 거야. 나는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니까. 어차피 그런 칭찬은 많이 들었으니까. 근데 고맙잖아요. 진짜 정영진 씨 덕분에 우리가 그 녹음을 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그래서 명함을 받고 연락을 했죠.
이 스토리를 듣고, 둘의 첫 방송인 ‘똑똑한 12시’ 6월 20일자 방송부터 정주행을 하고 있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최욱을 다시 한 번 게스트로 불렀고, 그게 또 반응이 좋아서 아예 최욱과 함께 *‘불금쇼’*라는 새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그 불금쇼는 메가히트를 치며, 결국 *‘매일 하는 불금쇼’*의 준말인 *‘매불쇼’*로 이어졌다.
정영진은 늘 자신이 본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웃겼던 사람은 “2014년의 최욱”이라고 말한다.
방송을 듣고 있다 보면, 정말 날아다니는 최욱의 메지급 원맨쇼를 체감하게 된다.
나도 사람들을 웃기는 데서 희열을 느끼던 사람으로서,
예전에 이성과의 술자리에서 열심히 입을 털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최욱에게 웃음과 동시에 묘한 존경심이 들었다.
재밌는 사람이 있고, 재밌기 위해 발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아등바등한 모습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결국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욱은 그런 게 없다.
정확한 딕션, 그리고 말을 듣다 보면 무작정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말을 듣고 반응한다는 점,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진중함과 통찰, 깊이. 이 모든 것이 이 사람의 매력을 더욱 배가시켜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하는 말이기도 한데, 재밌기만 한 사람은 절대 매력적일 수 없고,
진지함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절대 매력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만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밌기만 하면 피상적인 관계를 벗어날 수 없고, 진지하기만 하면 관계가 뻑뻑하고 무겁게만 진행된다.
그 둘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진지함을 갖춘게 낫다고 본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꽤 생기기 때문이다. 전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지낼 수 있는 사회적지능에 해당하고, 진지함은 그 사람의 세계관, 방향을 제시한다. 대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가끔 최욱이 보여주는 진지함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그 통찰은 꽤 깊다.
https://www.youtube.com/watch?v=1wIlQ0PwrvA&t=3142s
최근에 이 편이 참 기억에 남았다. 눈물을 흘릴줄 아는 정영진도 좋았고, 두 사람의 모습도 참 예뻤다.
두 사람애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지만 넣어두기로 한다.
저 남자의 편지가 sns에 난무하는 허접한 사랑글들보다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최욱 : 저는 근데 이 얘기는 하고 싶어요.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근데 지금 이 마음은 존재했던 겁니다. 나는 이건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지막까지. 존재했던 거잖아. 사랑해서 감동받고 울고 표현하고 이거는 존재했다.
정영진 : 근데 이제 나중에 또 안 좋은 때가 되면 이 모두를 다 지워버리려고..
최욱 : 그건 하지 말자는 거야.
정영진은 눈물을 보이고 최욱은 눈물을 참는 모습이 보인다. 나이든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여성호르몬이 나와서 그렇다고 말하는 모습을 가끔 아니 꽤 자주 볼 수 있는데, 난 그 이유를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로 돌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물을 자주 보이지 않는 여성은 남자보다 여성호르몬이 더 적다는건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격상시키려는 어거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영진과 최욱이 저 사실에 감응할 수 있는 이유는 저 두사람이 말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다. 그게 세월이 됐든, 내적성장이 됐던간에.
최욱의 저 말은 아주 중요한 말이다.
'"정신적인 사랑? 완전한 사랑? 진정한 사랑? 이 이야기가 과거적이지 않아야 돼요. 사랑은 미래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고 지금이에요. 사랑은 꽃을 피우겠다거나 꽃이 피었었다는게 아니라 '지금' 꽃을 피우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에 목말라하는 거고요. 사랑을 하면 현재에 살죠. 오늘이 행복하죠. 이게 사랑이라고요. 진정한 사랑, 영원한 사랑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대로 연주가 됐느냐 되지 않았느냐의 문제예요. 영원히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나타가 좋을까요? 딱 40분일지라도 전혀 들어 보지 못했던 소나타가 나를 울린다면 우린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꽃은 피면 지는 거예요.중요한 건 '폈느냐'예요. 꽃이 핀다는 건, '폈었다'는 것도 아니고 '필 것이다'라는 것도 아니에요."
'15년 동안 그분과 잘 지내셨죠? 그럼 된 거예요. 사랑이 영원하다는 건, 꽃이 피었다는 거예요. 그것은 질적인 비약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시간적인 지속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영원한 사랑이란 정확히 말해 너무나 강렬해서 영원히 온몸에 각인된 사랑을 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꽃, 그러니까 조화를 원하세요? 우리는 조화를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의 사랑이 꽃 폈다는 것이 중요하지, 지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질 것 같아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처럼, 헤어질 것 같아서 사랑하지 않는 게 제일 바보죠. 수차례 강조하지만 사랑이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는지, 몇 년 지속되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언젠가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소멸하기 마련이지요. 우리가 하는 사랑이 정말로 불사불멸 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 아닌가요? 헤어질 때가 오면 헤어져야 되거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헤어지게 되어 있어요. 영화는 끝날 테니깐. 그럴 때 우리가 그렇게 얘기해야 하는 거죠. 내 인생에서 15년 동안을 너무 행복하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늘 품고사는 강신주 박사의 이 말이 생각났다.
https://youtu.be/LhlSU4bBkpU?si=tTjzQMPtYT-PEJW8
최욱 : 추억님 저 최욱입니다.
상대방 : 네
최욱: 그래요 그 저랑 이제 수차례 이제 뭐 식사도 하고 심지어 이제 우리 추억님께서는 그 클래식 공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그것도 같이 본 기억 나시죠?
상대방 : 네
최욱 : 그런 시간들을 같이 이제 보냈었는데, 그냥 제가 그 가령 예를 들면은 그냥 아는 지인이라던지, 아니면 603호 아저씨였다면 그렇게 할 일은 없지않습니까? 우리 그 추억님꼐서는 어떤 생각으로 우리 최욱씨를 계속해서 만났고 그런 청에 응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상대방 : 음 그때는 오빠가 막 싫고 그런게 아니어서. 괜찮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너무 바쁘고 막 저랑 생활 패턴이 너무 다르니까..
최욱: 만약 그 생활 패턴이 같았다면 뭔가 좀 다른 이야기가 전개가 됐을까요?
상대방 : 음...
최욱 : 아니 그 직설적으로 얘기를 해도 됩니다
상대방 : 예 달랐을 것 같아요.
최욱 : 아, 그랬군요. 아, 제가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지금 우리 추억님께 약간 좀 미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가지로. 아 제가 지금 불금쇼관련해서 루저들 관련해서 지금 책을 하나 쓰고 있습니다. 책을 쓰고 있는데 이분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주를 이룹니다. 제가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본 적이 없어요. 과거에도 그렇고 뭐 앞으로도 그렇고. 진짜 열렬히 좋아했어요. 제가 이분을.'
최욱 : 그 심지어 저는 이분한테 이제 고마운게 뭐냐면요. 이분한테 민망해서 이런 얘기를 안했는데 이 분에 대해서. 사람을 좋아하면 막 다 알고 싶잖아요? 이 분이 이제 미니홈피 그 당시 유행했잖아요. 이분의 싸이월드 배경음악이 아 이분이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성시경의 지금의 사랑 그걸 해놨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 노래를 아껴 듣습니다. 아껴듣는다는 게 무슨 말이냐면요. 그 노래를 듣잖아요? 그러면 우리 이 추억님과 함께했던 그런 향기, 느낌 이런 잔상들이 떠올라서 참 좋아요.
정영진 : 아 난 정말 지금 오늘은 내가 소름이 돋는 게 내가 알던 최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최욱 : 예 저는 사실 지금 웃기기도 벅찬 시간이에요. 빨리빨리 해야 돼. 웃겨야 돼. 청취율 올려야 되는데. 아 제가 이 분 앞에서는 장난이 안되네요.
정영진: 우리 저 혹시 만약에 이 추억님은 지금 만약에 남자친구가 없다면..
최욱 : 아 그런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그건 진짜 결례고 폭력입니다.
다른 사람들 : 또 폭력이야? 그럼 뭘 물어봐야 돼요?
최욱 : 좋아하는 색깔 이런거 물어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쿠키
최욱 : 아 그래 수미야 고마워. (전화)연결해줘서. 그래 정말 고맙고 큰 힘이 됐다. 저 결혼 축하해. 그래 어.
이 영상을 보고, 문득 김동률의 ‘Replay’가 떠올랐다.
“그땐 보이지 않던 너의 맘은 더없이 투명했고
난 보려 하지 않았을 뿐”
“넌 나를 사랑했었고 난 너 못지않게 간절했고
그 순간을 놓친 죄로 또 길을 잃고
세월에 휩쓸려 헤매 다니는 어리석은 내가 있지”
이 노래를 듣는데, 이 가사들이 가슴에 깊게 와닿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는 ‘클리나멘’이다. 이 말은 기울어짐, 편향, 비틀림 같은 것을 뜻한다.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이 일직선으로 진행된다면, 정말 평행하게만 진행된다면 세상에 변화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변화는 그렇게 마주침으로부터 시작된다. 평행하게 나아가던 원자들 사이, 한 원자에 아주 미세한 비틀림이 생기면, 그 원자는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다른 원자와 부딪히게 된다.
이 클리나멘은, 우연한 비틀림이 불러오는 마주침이다.
평소와는 다른 길을 택하다 마주친 풍경도, 매번 시키던 짜장면 대신 짬뽕을 시켜보는 것처럼 사소한 일탈도 결국 그 '비틀림'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일직선으로 내리는 비는 없다. 모든 비는 사선으로 내린다. 대기 중 저항, 바람, 압력에 의해 비는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욱 가슴속 한 공간에 영원히 남을 저 기억과 저 Replay의 가사의 구절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친 죄로 또 길을 잃고 세월에 휩쓸려 다니기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평행하게 내리려는 비의 힘에 맞서 어떤 비틀림을 가하는 것이다. 조금 더 표현해보고, 조금 더 다가가보고,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은 채 용기 내어 한 번 비틀어보는 것.
비의 기울기를 조금만 바꿔보는 것. 그렇게 놓친 순간의 대가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가벼운 방식으로 치르게 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렇게 사랑하고 싶고, 그렇게 사랑받고 싶다.
아무 계산 없이,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솔직하게, 가보자고.
이번 콘서트에서 리플레이 듣다가 우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