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문턱

by 강준혁
KakaoTalk_20251017_102803703.jpg

새로 주문한 이어폰이 왔다. 기대도 있었고, '무선 이어폰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어'라는 약간의 코웃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인데 내 기대보다도 정말 훨씬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사실 유선 이어폰을 계속 고집했던 것도 음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유선 이어폰과는 비교도 안되는 편의성과 함께 훌륭한 소리를 들려준다. 이 정도 퀄리티의 음질이라면 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에어팟 프로 3도 정말 좋은데 음악 감상용으로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 모델이 내겐 더 좋게 다가온다.

PC에 연결해서 들어도 정말 좋다. 최근의 밤들중 가장 행복한 밤들을 보내고 있다.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선물하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행복감을 그 사람도 음악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 사람이 듣는 음악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나는 그 사람이 듣는 음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사람의 근처로 다가갈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순간, 사람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건 단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장소로 데려다 놓고, 그 공간의 공기와 색감까지 되살려낸다. 잠들지 않고도 꿀 수 있는 꿈과도 같다. 그건 일종의 합당한 환각 증상이다. 그런 면에서 "음악은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말은 꽤 타당하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야구장이나 콘서트에 함께 가고 싶다. 사실 중요한 건 야구나 콘서트가 아니다.

어떤 분위기 속에 함께 푹 빠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다.

좋은 음악이 좋은 공간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그 음악과 아티스트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천천히 잠긴다.

마치 투명한 돔이 우리 머리 위를 덮는 것처럼. 서로를 방해받지 않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완전히 연결된다.

그 투명한 돔은 마치 정서의 방어막처럼 작동하여, 어떤 외부의 소음도, 어떤 현실의 불협도, 그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분위기, 그 정서의 진동 하나하나는 세상 그 어디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연결감으로 자리잡는다.

그 감정의 요동을 함께 나눴다는 사실만으로도, 둘만이 통과한 어떤 문을 함께 지났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 경험은 은밀하고도 특별한 유대감을 만들어낸다. 그 순간은 휘발되어 없어지겠지만, 그 진동은 마음 어딘가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게 야구장이든, 길거리의 작은 공연이든, 혹은 아무 말 없이 함께 바라보는 풍경이든 중요하지 않다.

둘의 감정을 흔들고, 서로를 더 깊이 엮어주는 순간이라면 그 어떤 장면도 충분하다.

물론, 그런 순간이 반복되려면, 결국 '취향의 일치'라는 문턱을 넘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사람은 결국 비슷한 감수성의 수준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떠올랐다.

최근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한 빌리 아일리시의 ‘Birds of a Feather’를 들으며,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 깃털을 지닌 새들이 모여드는 것처럼, 감수성의 깊이, 그 결의 방향, 취향의 울림이 닮은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지 않을까?


이성복 시인의 시 제목처럼 우리는 사랑만을 사랑할뿐이며, 그 시의 한 구절처럼 사랑은 자기반영과 자기복제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떤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