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

by 강준혁

‘안녕’이라는 말로 끝을 확인하고 매듭지어지는 관계가 있고, ‘안녕’이라는 말을 꺼내는 일조차 무색해질 만큼 생기를 잃어, 이미 죽어버린 채 기계적인 관계로 전락해버린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관계는, ‘안녕’이라는 말이 없어도 작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서로 그 공기를 감지하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한 채 망설인다. 허나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을 기점으로 그 관계의 끝이 확인될 뿐이다. 언어의 매듭이 없어도, 우리는 직감한다.

마치 사망 선고를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환자 곁에서 말없이 시간을 끌던 의사처럼 그러나 결국,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삐― 소리와 함께 모두가 그 순간을 직면하게 되는 것처럼.

그렇게, 작별은 말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관계의 끝은, 어떤 문장보다도 앞서 감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죽은 관계엔 고마움과 함께, 안녕을 빌어주며 흘려보낸다. 이미 고해진 작별 앞에서는, 애써 저항하기보다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직 그 어디에도 분류되지 못한, 얼마남지 않는 내 몇몇 관계들 속에서는 그저 내 역할을 한다. 너무 힘을 주지도, 너무 힘을 빼지도 않으며 나의 자리를 지키는 일. 그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과업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게 예측 가능한 흐름 속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인연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관계는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러니 결국, 그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까지도 함께 품어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 관계의 생생함이자,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방식중 하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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