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해 Jul 19. 2023

이사

길 내기

이사


이희경


이사를 하니 다시 다니는 길을 내야 했다

이리도 걸어보고 저리도 걸어보고

조금씩 눈에 익은 길을 만들고 있다

가장 짧게 마트로 가는 길이라든지

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을 때 버스나 지하철의 동선이라든지

먼저 살던 곳의 천(川) 길 같은 곳은 어디에 있을지도 몰라

마치 지구 되어 달이 되어 거대한 태양계의 궤도에서 

이탈이라도 할 것 같아

아는 곳만 아는 그 처음으로 길들이고 있는 중이다

제 걸음을 빙빙 돌려 대면서

조금만 더 멀리 돌아가면 

낯익고 평탄한 길을 놓고도

마음 안에 억척스레 붙어사는 순응주의

가장 짧게 도는 길이 빗나갈 수도 있다는 건

조금 살아봐야 알 것 같아 

방목된 삶이란 조금은

뒤죽박죽 하고 좌우충돌하는 거

살아 있다는 증거, 삶의 주인이 되는 거  

이렇게 말해도 그것은

나는 싫다 불편하다

억척스레 제 바퀴를 찾아 돌아가도

비가 오고 바람 불고 

천둥과 번개와 눈보라 치더라

어느 물드는 저녁노을을 잠깐의 휴식이라 말하는 것이

쉬웠던 일인가

저녁 밥상에 들기름에 재운 김과 

갈치 한 토막 구워 놓으면

최고의 반찬처럼 밥 한 그릇 뚝딱 하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쉬운 일이란 말인가

오늘은 계단 옆에 승강기를 발견하니 

흐뭇하게 웃음이 나오는 일이라

오늘 한 건 얻어걸린 듯해서

의기양양하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 모를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