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는 예전에 할머니가 살고 계신 시골에 가면, 조금 일찍 일어나서 할머니 손을 잡고 논둑길을 걸어 다녔단다.
걷고 나면 아침 이슬과 서리로 바짓가랑이도 젖고, 운동화도 젖었다. 그것이 싫어 불평이라도 할라 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그래야, 사람이야, 크면 안다."
도리 켜 보면, 그 말씀은 자연과 부딪쳐 봐야 쌀이 어떻게 나오고 뭐가 어떻게 되는 지를 경험과 감각으로 깨달아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단다.
친구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할머니의 지혜에 감복해했다. 그 말을 내게 할 때마다 겉으로는 이해했지만
속뜻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것이 글을 쓰려고 하니 갑자기 확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고향이 있어도 일찍 서울에 올라와 시골의 기억이 없다.
꽃도 서울 꽃이고, 들도 서울 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울 꽃 시골 꽃이 어디 있고, 서울 들 시골 들이 어디
있느냐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서울 꽃 속에서 그들 고향에 핀 꽃을 만나고 시골 꽃의 자리를 그린다. 그 꽃에서 고향을 꺼내 나의
친구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움 질퍽한 향수에 젖는다. 그런 것이 다른 점이다.
서울에서만 산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고향이 결여된 것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의 글을 쓰는 것이, 이건 내 생각인데 글의 약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그것이 이야깃거리를 찾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유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경험이 없으면 항상 허공에 떠 있는 글일 수밖에 없다 고 말이다
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대상에 대한 관찰이 서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 와 낙엽을 보면 근사하다, 멋있다, 쓸쓸하다는 꼭 사물을 그려 내려고만 했다. 나도 가을의
대상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한 편에 세워 놓고 가을의 울긋불긋한 것만 그리고 있었다. 그러니 글이
되겠는가? 항상 관찰자 입장에서 사물을 보고 자기 입장을 빠뜨리니 한계를 느끼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만 쌓여갔다.
글을 잘 쓰려면 감각이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내가 보는 눈을 통해서 끄집어내어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감력을 넓혀야 한다. 나무를 보아도 나와 연관 지어 나 닮은 곳을 살펴야 한다. 나와 나무 사이의 공감력을 키워야 한다. 쳐다보면 같이 보고 있다 하고, 나 닮았다 하고 나무가 나를 웃으면서 보는가, 위압적으로 보는가 뭐 이런 것도 살펴서 글을 써야 글이 힘을 받는다. 즉, 얼마나 많은 상상과 생각을 끄집어
내서 새로운 것을 글로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싸움이다. 사실을 보고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이 간단한
이야기를 자주 잊는다.
가을 하늘은 맑고 청명한 하늘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세심하게 살펴보니 구름이 참 많다고 느꼈다.
예전 같으면 '구름들끼리 모여있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을 터인데 상상의 세계에 데려다 놓고 구름
모습을 그리니 파란 하늘을 가득하게 덮어버린 구름들의 모습이 감성적으로 다가오며 가장 풍요롭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구름 속에서 욕망을 보고, 구름 속에서 허무를 보고, 구름 속에서 만남과 헤어짐도 본다.
사물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느낌을 글에 담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노력이 글 속에서 점점 성장하는 내가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