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14.
나는 어렸을 때 시골(부여)에서 살았다.
그 시절의 기억은 너무 어린 시절이라 조각으로 하나 둘 보이지, 연속적인 것은 없다.
우리 형제들은 명절이나 생일 때 한자리에 모이면 한차례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게 나의 기억 속에 없는 나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나보다 스무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우리 큰언니는 그당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큰언니는 막내 동생 주려고 읍내에서 커다란 알사탕을 사 가지고 와서 내게 주었다. 그 다음날까지 안 먹고 갖고 있다가 사탕이 없어진 것을 알고서 나는 어디 있냐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나의 바로 위의 오빠의 기억을 기준으로 하면 큰오빠는 17살, 둘째언니는 14살, 작은오빠는 7살이고, 내가 4살쯤 추정된다. 나를 뺀 세 사람이 없어진 사탕을 찾기 시작하다가, 안방과 건너방 사이의 마루에서 뒷곁으로 가는 쪽문이 나 있는데 그 문밖 뒤뜰에, 누군가가 빨아먹다 뱉어 놓은 반쯤 녹은 사탕을 발견했다.
성질이 난 큰언니는 누가 그랬냐고 세 사람을 싸리 빗자루로 두들겨 패 주었는데, 여기서 예전에는 17살이면 조숙했던 고등학생 큰오빠가 먹었겠는가, 아님 14살 중학생인 둘째언니가 먹었겠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사온 사탕을, 받은 내가 사탕을 먹고 내 사탕 어디 있냐고 펄펄 뛰었겠는가.
나보다 세 살 더 먹은 작은오빠는 자기가 제일 많이 맞았다고 억울하다고 명절 때마다 시비를 거는 장본인이다. 다들 자기가 더 맞았다고 목소리가 커진다. 물론, 객관적으로 따지면 셋 중에 본인들이 범인이 아니라면 누구하나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세월이 지나도록 해결이 안 나고, 만나면 꼭 한번씩 벌어지는 우리집 이 이야기는 끝까지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범인은 자수해라, 이제 지난 이야기 아냐?,그냥 범인이 누군지만 알면 돼, 누구야, 말해 봐.”
가끔 내가 네 살이면 자기가 먹은 것 잊어먹고, 사다 준 큰언니 얼굴 보니 생각이 나 사탕 달라고 졸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기억없는 기억이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십년을 저토록 서로가 ‘나, 아냐.나 아냐.’
하며 일관되게 억울함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보면 싸움하는 줄로 착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짧은 시골생활을 끄집어 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그들만의 해프닝일 뿐이다.
너무 어린 시절의 시골 생활이라 내가 있어도 내가 빠진 이야기들을 들으면, 들이나 개울가에서 놀던 이야기들, 나무하던 이야기들, 친구 이야기들, 친척 이야기 등. 그들만의 시골의 향수를 가지고 산다. 나름 재미 있었나 보다.
“너, 우리가 개구리 뒷다리 구워주면 잘 먹었다, 엄청 잘 먹었어.”
지금 내가 맛을 모르는 개구리 뒷다리! 그것은 기억없는 추억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