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그림

날마다 그리운 어머니

by 청해

안방 벽에 어머니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민속화다.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고, 담 하나 사이로 밖에는 감을 따려는 아이들이, 안에는 감을 지키려는

할아버지가 대립하고 있는 해학적인 그림이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붓글씨를 배웠지만 그림은 소질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사시다가, 환갑이 되었을

때 성균관 대학 안에 유림 학당에 가셔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생 글씨를 쓰셔서 붓에 익숙해서인지 어느 정도 지나서는 잘 그리셨다.


어머니는 재주가 많은 분이셨다. 80이 넘어서까지 유림 학당에 신부 수업반에서 예비 신부들에게 한복 입는 법을 강의하셨다.

손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잘하셨다. 한복 만드는 법은 물론, 양장도 잘 만드셨고, 뜨개질, 붓글씨 등, 돌아가시면 그 솜씨가 아까워서 어떡하냐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 솜씨를 세 딸 중에 내가 닮았다고 했다. 한복도, 양장 만드는 법도, 붓글씨도 못하는 나에게 뜨개질 하나 잘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했다.


내 하던 일이 조금씩 줄어드는 때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림을 그려 보자.'

마침 집 앞에 문화 센터가 있어, 색연필로 그림 그리는 반에 등록을 했다.

"선생님, 한 1년 지나면 제 글에 삽화 정도 넣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4개월, 5개월 열심히 했다. 쉬운 것은 곧잘 따라 했다.

그러던 중 복잡한 그림 교본을 받고,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디테일(detail)한 부분이 나타나면 손에서 힘이 빠지면서 '어떡해, 어떡해.' 하며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집에서 연습하던 날도 점점 횟수가 줄었다.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연습 없이 그냥 센터에 가서

그리다가 끝나는 날이 많아졌다.

그림 그리는 일이 스트레스(stress)가 되었다.

마음에서 멀어진 그림 그리기는 그렇게 6개월 만에 일단락이 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잡기는 내가 역부족인

것을 느끼면서 끝나 버렸다.


무얼 배우든 어느 정도 단계가 되면 뒷걸음치고 싶은 순간이 온다. 그 고비만 넘기면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는데 고비에서 무너진다.

접어 두었던 스케치 북을 꺼내 보니 한창 신나서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충전의 시간이 잠시나마 그림이었음을 떠오르니 미련이 생기기도 한다.


어머니의 그림에 어머니가 서려있다. 어머니의 그림은 언제나 어머니를 나에게 보낸다. 어머니의 그림은 그림 속에서도 붓을 들고 계신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잘했던 기억보다 좀 더 잘해 드릴 걸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엄마, 내 엄마---"

바라보며 불러보는 나의 그리움이다.


변명 중입니다

청해

한 벽을 채우는

어머니의 그림

붓 끝의 섬세함에 매료되어

붓을 들었습니다


당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

비슷하게 흉내 냄은

어머니의 세 딸 중에

내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끝 야무짐 말입니다

저 손끝의 자신감

붓의 힘찬 율동들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안 되어

알아버렸습니다


어머니의 손길로 가보지도 못하고

그런 자신을 이해하려는, 그런 마음을 용서하려는,

자꾸 밀어내고 있는 부끄러움

그런 모습이 싫어

붓을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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