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성이 남남이면서 배우자들이 형제라서 가까워진 사이, 낯선 사람들끼리 법( in law)으로 묶여 한
가족이 된 사이, 형님(동서)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처음에 큰 집에 갔을 때, 형님이 하얀 밥에 고들빼기김치를 점심으로 차려 주었다. 고들빼기김치는 처음 먹는 음식이었다.
고들빼기는 '고채'라고도 하는데, 산이나 들, 밭에 흔히 나는 것으로 뿌리째 뽑아서 담는다고 했다.
고들빼기를 소금물에 하루나 이틀 삭혀서, 멸치젓을 다리지 않고 통째로 넣고, 잔파를 잔뜩 넣고, 잣, 대추와 밤은 채를 치고, 밥으로 풀을 쑤어, 기본적인 양념으로 진하게 버무렸다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하얀 밥 위에 고들빼기김치를 통째로 올려서 먹으니 밥 한 그릇 뚝딱 개눈 감추듯 비웠다.
조카(큰집 큰딸)의 결혼식이었다.
요즘엔 결혼식 음식이 고급이지만 예전에는 설렁탕이나 갈비탕이 전부인 때가 있었다. 곁들여 떡 종류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큰 집은 달랐다.
육회, 가오리찜, 나물(도라지 무침, 오이 무침 등), 김치, 게장, 떡---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남녀를 불문하고 게장이 얼마나 맛있는지 손에 들고 쭉쭉 빨고 있었다.
나의 친정 언니와 올케는 이제껏 결혼식장에서 이렇게 맛있고 푸짐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딸의 결혼에 마음 바빴을 터인데 그 많은 음식을 밤새 준비했던 것이다.
어느 날 형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요리책을 내고 싶어도 요즘에는 재료를 저울에 몇 g, 몇 g 재니까, 내가 그렇게 한 적이 없으니, 뭘
알아야지. 그게 쉬운 일이 아닐 거야."
형님이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들으면서도, 나는그 분야에 문외한이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
그냥 흘려들을 수밖에 없었다.
TV를 보면 요리 잘하는 사람이 많다. 요리도 잘하고, 먹기도 잘한다. 또 TV에는 어느 종갓집의 대대로 이어오는 음식도 나온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유명인이고 유명인을 인맥으로 가진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서점에 가면 요리책이 한가득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잘한다는 뜻이다.
알게 모르게 숨은 고수들이 많다. 우리 형님도 숨은 고수다. 형님의 음식 솜씨가 사장되는 것이 마음에는
남아서 형님을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큰 집에 가면 형님은 쌀을 불렸다가 내가 들어서면 그때 밥을 했다. 언제나 한 상 가득 차려 주면
나같이 소식하는 사람도 음식을 탐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매 번 젓가락을 들고 놓을 수가
없었다.
형님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가 동서라기보다는 꼭 친정 동생 같아."
이 가슴 뭉클한 말을 들은 내 어찌 우리 형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찾아가기만 하면 좋아서 뭐든 다 내주는 사람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친정 엄마처럼 바리바리 싸 주는 사람이 우리 형님이다. 김장
김치 해 주는 사람이고, 속에 있는 말을 내게 하는 사람이다. 속 이야기를 할 때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런 얘기 누구에게 하겠나."
어떤 집은 동서 간에 사이가 안 좋다는데 나는 우리 형님만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형님이 아프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오래오래 서로 의지하며 건강하게 나하고 친구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동서
청해
찾아가면 갓 지은 밥을 지어
갈무려 놓은 귀한 반찬으로
진수성찬 차려주는 사람
그 맛있는 솜씨로 김장김치 담가주는 사람
제사 때면 다 준비해놓고
소원해할까 김 잴 것, 전 부칠 것 조금
남겨놓는 사람
식구들 흉보면서 맞장구치는 사람
전화로 몇 시간씩 수다도 떨고
내 눈물 들어주고
동생이라며
가끔 사랑한다고도 말해주는 사람
우리 집 맏며느리 종부이신 우리 형님
동서랍니다
40년, 가까이에서 숨 쉬고 있는
나의 일부 된 사람
몇 달 못 뵙더니 왜 안 와 왜 안 와
부르는 전화 목소리
무심코 듣다가 가슴 먹먹해
우리 형님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