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퇴근시간.
집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 뭐 잡숫고 싶어요?"
"남대문 시장에 가면, 돼지머리고기 파는 곳이 있어. 돼지코 사와라."
"네? 돼지코요? 그것도 팔아요?"
"팔아, 달라고 하면 줄 거야."
'돼지코라니? 군 고구마도 아니고, 귤도 아니고. 이걸 어떡해. 그냥 내가 알아서 먹을 걸 사 가는 건데--'
이 황당한 전화를 끊고 든 생각은 '큰일 났다.'였다. 남대문 시장에 도착할 때까지 걱정이 되었다.
돼지머리 파는 곳은 의외로 쉽게 찾았다.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데, 커다란 양은 솥 위 긴 도마 같은 것을 얹어, 그 위에 돼지머리를 놓고 팔고 있었다. 그 모습만도 징그러웠다.
"돼지코 팔아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정쩡한 나의 물음에 나를 쳐다보는 아주머니도 황당하다는 눈치다. 빤히 쳐다보았다.
"돼지코 없으면 나머지 어떻게 팔아?"
쑥스럽고, 창피하고, 쥐구멍에라도 들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팔아."
그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은 어떨까? 스물넷 아가씨, 짧은 치마에 굽 높은 구두, 얼굴까지 상기되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고사 지내려고 사 가는데 돼지코 없으면 누가 사가?"
그 말이 맞다. 돼지머리도 날 보고 웃는다.
돼지코만 사가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무모한 짓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나한테 뭘 사 오라고 말하신 적이 없었다. 내가 뭘 사갈까고 물으니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씀하셨나 보다. 아마, 그래서 나도 신경이 쓰였나 보다.
"돼지코 팔아요?"
몇 집을 그렇게 물으며 지나는데, 뒤 끝이 당긴다. 뒤에서 욕하는 것 같다.
마침내, 찾아냈다.
길고 날씬한 칼로 돼지코를 뚝 잘라주시는 아저씨가 계셨다.
"누가 먹으려고 해?"
"아버지요."
"그 양반 돼지고기 먹을 줄 아는가벼."
그런데 나는 이 아저씨가 걱정이 되었다.
"나머지는 어떡해요?"
"응, 편육 하면 돼. 맛있게 드시라고 해."
고마운 아저씨!
집으로 향하면서 돼지코를 샀다는 안도감과,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는 뿌듯함이 겹쳤다.
지금도 맛있게 잡수시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