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하는 말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려다가 포기했다 한다. 아들이 다시 시작하라며 책을 사 주었는데 풀러 보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고 했다.
순간 나는 생뚱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 볼까?'
친구에게 내가 한번 도전해 보겠으니 책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다음 날로 친구는 책을 가지고
왔다.
몇 해쯤 묵은 책과 문제집은 포장 그대로였는데 부피가 어마어마했다. 보기만 해도 조금 아찔했다.
처음에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Tv 교육 프로에서 공인중개사 강의를 하는 것을 보고 한 달에 3만 원씩을 내고 강의를 듣게 되었다.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은 총 6과목인데, 1차는 두 과목으로 부동산학 개론, 민법 및 민사 특별법, 2차는
네 과목으로 중개사 법령 및 실무, 부동산 공법, 부동산 세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험은 1차와 2차 동시에
볼 수 있고, 1차 2차 따로 볼 수 있는데 따로 볼 경우에는 1차를 붙어야 2차를 볼 수가 있다. 1차를 붙은 사람은 다음 해 까지 2차를 볼 수가 있다. 점수는 평균 60점 이상이어야 하고 40점 미만의 과락이 없어야 한다.
마침 tv 프로그램의 강의 하는 학원과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같아서 듣기가 편할 줄 알았다. 그런데 책 한 권의 부피가 만만치 않아서 보기가 버거웠고, 오래된 책이라 강의에 맞는 부분을 찾는데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다.
가지고 있는 책과 강의가 비슷한 듯하다가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 Tv 강의가 올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KT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작년 강의를 그냥 틀어주고 있었다. 강의를 중단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
해에 나온 문제집을 사서 혼자 정리하려니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학원에 60일 특강이 있길래 등록을 했다. 책도 오래되고, 강의도 지나간 강의를 들었던
탓에 60일 만에 많은 양을 감당하기에 힘에 부쳤다.
시험 결과, 1차는 간신히 붙었다 생각했다. 더도 덜도 없는 딱 합격점이다. 결과는 1,2차 둘 다 떨어졌다.
내가 가진 시험지를 다시 보아도 1차는 합격인데 왜 떨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험을 출제한
'산업인력공단'을 찾아갔다. 내 답안지를 확인해 본 결과는 시험지에 분명 정답인 3번에 마킹을 되어 있는데, 답안지에는 1번에 마킹이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걸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다. 1년 동안 내가 한 공부 방법이 얼마나 미련했던가 하는 생각들로 마음이 착잡했다.
해가 바뀌고 얼마 동안 공인중개사 공부를 제쳐 놓았다. 마음은 불편했다. 도전한다고 해 놓고서 포기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강의를 들어 볼까 하고 00각이라는 중개사 학원에 전화를 했다. 약 80만 원을 내고
인터넷 강의를 듣다가 올해 붙으면 낸 돈을 다 돌려주고, 내년에 붙으면 반을 돌려준다고 했다.
끝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등록을 하니 2020년 새로 출간된 새 책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강사마다 중개사 법은 수시로 바뀌니 꼭 새 책과 거기에 맞는 강의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나 어리석게 공부했던가 생각하며 강의를 들으니, 강의와 책이 딱딱 맞아떨어져 공부하는 맛이 났다.
하지만 나이도 있고, 워낙 양이 방대해서 모든 것을 소화하기가 힘에 부쳤다. 돋보기를 쓰고 공부하니
나중에는 10분 공부하고 10분 눈을 감고, 10분 공부하고 20분 누워 있고, 10분 공부하고 1시간 자야 했다.
그런 시간이 날마다 지나갔다. 많은 시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전은 도전이라서 포기가 되진 않았다.
시험날이 되어 시험을 보고 나오니, 이 생각이 먼저 든다.
'이번에 떨어지면 어쩌지? 그러면 포기해야 하나?
부동산 중개업을 할 것도 아니고 그냥 도전이니까, 이번에 떨어지면 정말로 포기해야지.'
집에 오니 피곤하고 착잡하고, 머리가 아픈데 잠은 오지 않았다.
발표된 해답지에 답을 맞히는데 1차는 합격점보다 두 문제 더 맞았고, 2차도 마찬가지로 두 문제 더
맞았다.
'합격이다!' 일단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작년에 마킹을 잘못해서 1차가 붙은 줄 알았다가 떨어졌는데, 두 문제씩 더 맞았다지만, 간당간당한 점수에 불안이 몰려왔다.
발표날까지 날마다 문제지에 답을 맞혀 봤다. 정말 마킹만 잘했다면 합격이다.
설렘 반 불안 반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아! 정말 날아가는 기분이다. 해방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나의 무모한 도전은 '국가자격증' 하나를 내게 선사했다.
부동산 중개사 시험이 무척 어렵고 양이 많다.
그 자격증을 따서 자기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해 낸 사람들이다. 시험 보는 과정을 통해서
알지 못했던 부동산 중개사라는 직업에 대해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쓸데없었다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길을 가다가 간판이 보이면 한참 쳐다보며 걷는다. 사람 사는 일에 대한 무게가 느껴져 뭉클해지기도 한다.
1년 안에 합격한 나는 낸 돈을 다 돌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