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길목에서

21.07.13

by 청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른을 넘어서니, 일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일은 안전해야 될 것 같고, 생계유지 그 이상의 수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였다.

그럼 무슨 일을 해야하나? 그러던 중 '독서실'이 어떨까? 독서실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부추겼다.

추진력은 좋았다. 그날부터 독서실은 막연한 상상이 아닌 나의 실제의 꿈이 되었다. 꿈의 독서실에서 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적성일 텐에 어리석게도 나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니, 생각의 테두리에도 넣지 않고 그저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일 만 머리 속에 있었다. 그게 독서실이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막연한 생각이 실현에 옮겨진 것은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를 만났다. 뜻밖의 말을 들었다. 자기 오빠가 건축일을 하는데 집짓고 돈을 못 받아서 대신 독서실을 인수 받았는데 올케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내 놓았는데 관심 있으면 가 보겠냐 해서 나는 나의 언니와 함께 청담동에 있는 독서실을 찾아갔다. 들어보니 내게 꼭 맞는 일 같았다.


그 곳에는 친구의 엄마와 올케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새색시였던 그 올케 언니는 영화배우만큼 이뻤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방실방실 웃으며 마치 무대 위 연사처럼 말하는 그녀의 말이 너무 좋아서 장부를 세심히 보아야 한다는 기본 상식 마저도 잊어버렸다. 정말 친한 친구의 언니라서, 그녀의 말들이 다 진실일거라는 믿음으로, 신중하기로 이름난 우리 언니 마저 의심을 안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서 방심했던 것이다. 그 날로 가계약을 하고 바로 나의 꿈은 그렇게 실현되었다.


적성? 능력? 나에게 사치였다. 내가 벌어서 먹고 살 만큼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영업의 기술이 없어도 독서실 주인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서실을 인수 받고, 첫 날 고사도 지내고, 기쁨을 만끽한 것은 딱 하루였다.

다음 날 부터 장부에 적힌 학생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시험 볼 때 뜨내기처럼 왔다가는 경우가 많았고, 거기다 회비를 제대로 내는 학생도 없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둑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던데.. 속았다!

장부를 제대로 들여다 보고 한 달 수입을 체크해 보니 월세도 낼까 말까한 정도였다.

수도세, 전기세는 어떡하지? 정말 친한 친구의 언니라서 추호도 의심을 못했고 꼼꼼히 야무지게 따지는 우리 언니가 의심을 안해서, 친구가 내 사정을 잘 아니까, 배심감은 고통으로, 원망으로 나날이 아픔이었다. 저녁에는 그 몇 안되는 학생들 중에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달라하면 끓여 팔아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친구에게 그 때는 말도 못했다. 속았다는 배신감에 전화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속앓이로 그 친구를 만난다는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한참 지난 후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친구는 몰랐다고 당황해 했다. 내가 독서실을 인수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니까. 신중하지 못한 것, 의심하지 못한 것, 다 내 잘못이니까.


독서실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전문 중개사에게 거져 내 주다시피 내 놓았고 몇 달이 안돼 다른 사람이 인수를 했다. 그 일은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프다. 내가 빠져 나오기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양이 된 것 같아서 늘 미안하고 그 사람이 능력이 좋아서 잘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기도 한다.


조그만 사업이라도 자기 사업을 하려는 생각을 갖는다면 그 사업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나처럼 독서실을 하려면 위치는 어떤가? 장소는 깨끗한가? 학생들은 얼마나 있는가? 다른 독서실이 근처에 있느가?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내가 정말 그 일을 할 수가 있는가? 등.

무작성 잘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무 사전 준비없이 덜컥 일을 저지르는 무모함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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