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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 Jul 03. 2022

엄마가 떠난 그날

D-day, 예고 없던 사랑의 안녕.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은 바로 오늘이다.

내 세상이 하루아침에 경고도 없이 사라진 날.

내 세계는 가족이었다. 그 세계가 사라진 날. 뻥- 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간 날.


정말 평범한 날이었다.


재택 해도 되는데도 굳이 자전거를 타겠다고 출근을 했다.

(출근하지 않았다면, 집에서 엄마와 한 번이라도 더 통화할 수 있었을까?)

출근을 하면서 예쁜 자연과 상쾌함에 행복해했다.


그날 출근 전 갔던 카페, 카페를 향했던 길들. 처음 갔던 길과 카페인데 놀라울 정도로 다 기억이 난다.

카페에서 출근 시간 전에 급하게 마쳐야 하는 일을 부랴부랴 했다.

집중이 잘 되어서 뿌듯한 마음으로 일을 마치고선 회사를 갔다.

회사에서 여느 날과 같이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고, 돌아와서는 다시 회의를 하고..


카톡도 난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확인할 수는 있었으면서 왜 자꾸자꾸 귀찮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아빠가 보낸 카톡도 바로 확인했으니까.


“엄마가 다칫다”


나는 항상 불안했으니까.

항상 불안해도 별일 아니었으니까

다리가 다쳤나? 같이 차 타고 이동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엄마랑 아직 이야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그 시간.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빠가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있나?


엄마는 받겠지.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불안함이 이상한 느낌이다.

더 불안 해지는 건 또 아닌데, 불안함 그 느낌이 이상해지고 있다.

비슷하게 불안한데, 불안함의 색이 바뀌고 있다.


가족 채팅방에 "걱정돼ㅠㅠ 전화 좀 받아줘~~"하고 보냈다.


이상하다.. 라며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하며 카톡을 옆에 두고서 계속 봤다.


회의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사진을 보냈다.


병원 위치가 올라왔다.

그리고

엄마 사진이 올라왔다.


엄마가 눈을 감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무서운 호스로 입을 막고서

눈 주위가 푸른빛이 돌았다.


하지만 잠시 기절 상태인 양 보였다.


엄마가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지라 나쁜 사람들이 이방인이라고 엄마한테 해코지한 건가 했다.


사진을 보자마자 작은 비명과 함께 눈에서 눈물이 저항 없이 마구 흘렀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안된다. 이게 무슨 사진이던 안된다. 안된다. 절대 안 된다.


나의 세상에 금이 쩍 하고 생겼다.


아빠에게 울면서 계속 전화를 했다.

아빠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이 부분은 기억이 약간 지워졌다.

회사의 비상계단에서 말도 안 되게 울면서 위급하다는 상황을 알아들은 기억만 있다.

엄마는 아직 살아있다.(라고 생각했다)


그때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 어떤 정신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당장 미국으로 달려가서 엄마를 간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무작정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짐을 싸서 집으로 달려갔다.


당장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일도 무엇도 다 필요가 없다. 그저 엄마를 빨리 보고 싶다.


오늘 당장 하와이를 가야 했다.

비행기표를 검색해보니까 오늘 밤 9시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고 난 당장 떠나야 했다.


동생에게 전화해서 오늘 밤에 당장 하와이로 가자고 했다. 우리 셋 다 가야 한다고 했다.

동생이 울면서 나에게 말했다. "언니 나 너무 무서워.." 목소리가 깊게 잠긴 채로 동생은 두려움에 심하게 떨고 있었다. 동생은 평소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남달리 컸다.


그리고 택시를 얼른 잡았는데, 택시가 지하철보다 더 걸린다. 답답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엄마한테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계속 계속 전화기에 의지해서 통화를 계속 계속한다.


동생이 나에게 울면서 말한다.

엄마가 심장이 안 뛴다고..

엄마가 심장이 안 뛴다고?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묵묵히 운전을 할 뿐이다.


엄마가 심장이 안 뛴다고?


말도 안 돼


세상에 금이 가던 것들이 팡- 하고 부서졌다.


안돼.. 안돼.... 그 말을 들을 때 까지도 난 엄마의 죽음을 감히 한 번도 생각 못했다. 말이 안 되니까.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없는 말이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말이 그냥 말이 안 되는 그 말에 그 택시 안에서 오열을 하고 가슴을 퍽 퍽 때렸다.


미친 것처럼 굴면서도 엄마의 딸이라서. 엄마에게 내가 자부심이 되고 싶어서, 자부심이었던 엄마를 욕보이지 않으려고 택시기사님께 정중히 인사도 하고 모든 예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한다.


집에 뛰어 돌아오는 그 걸음이 유난히 고통스럽다.

한 발. 한 발.

발목에 엄청나게 무거운 추가 달린 듯 발이 무거웠고, 무게 중심을 담당하는 기관이 고장 난 듯 비틀댔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든 순간이 다 괴로웠다.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현실을 걷는 건지 지옥을 걷는 건지 모르겠다.

지옥길 같았다.

가지런히 정리된 보도블록들이 쭉 뻗어있는 그 길이, 나무가 싱그럽게 연초록 빛을 띠며 흔들거리는 그 길이, 지는 햇살이 흰빛과 주황색을 내며 나무와 길 위로 눈부시게 비치던 그 길이.


불과 3일 전이다.

엄마와 이곳을 손잡고 걷던 때가.


걷는 걸음마다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와 이곳을 함께 들어왔던 기억

엄마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 했던 기억


그러다 이상하게 점점 침착해진다.

이상하게 마음이 갑자기 단단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엄마가 떠나갔구나."


TV에서 봤던 수많은 동물들이 어미와 떨어져 혼자 생존하는 그 영상이 머릿속에 재생된다.

이게 자연의 이치인 건데.. 25년 동안 그걸 몰랐나. 너무 당연한 모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순간순간 놀랍도록 초연해지기도 한다.


집 앞에 다다라 힘겹게 공동현관을 열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안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실로 엉망이다.

몇 시간 사이에 사람이 이리도 비참해질 수 있는 건지..

동생들이 너무 걱정된다. 동생들이 너무 보고 싶다. 내 가족이 너무 보고 싶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엉망진창이 된 몰골로 집에 급하게 들어간다.

동생들이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동생들이 있다.

동생들을 보니 더 가슴이 아프다.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같이 괴로워했던 느낌만 기억난다.

이제 갓 20살이 된 남동생은 이상하리라만치 울지 않았다.


얼른 엄마 아빠가 있는 하와이로 가야겠다고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다행히 비행기 표는 있었지만 여권 문제가 있었다.


여동생 여권이 만료됐다.

남동생 여권은 대구에 있다.

내 여권은 도저히 안 보인다.


미치겠다. 당장 하와이를 가서 우리 아빠를 살려야 하는데

우리 아빠가 엄마 따라갈까 봐 너무 무섭다.

엄마가 없어졌다는 사실만큼이나 아빠도 무서웠다.


여동생과 곧바로 여권을 발급받으러 갔다.

여권발급을 위해 사진을 찍고 여권을 발급받고..

사람들은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자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감사하고 슬펐다.


부랴부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서 집으로 걸어서 갔다.

걸어가면서 이 긴 하루 동안 외면한 이야기를 하나 둘 했다.

처음으로 엄마에 대해 몇 개 웃으며 이야기도 했다. 그냥 엄청 웃긴 이야기라기보다는 엄마가 여기 걷는 거 참 좋아했는데.. 며칠 전에 우리 여기 같이 걸었는데.. 이런 얘기


남동생은 하루 종일 울지 않았다. 여권을 가지러 멀리 가야하는 남동생을 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핑계로 함께 걸었다.

걸으면서 엄마 이야기를 꺼내자 남동생이 흐느낀다.

울면 엄마가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울고 싶지 않다면서 운다..


내 기억에 없는 연락. 이날 오후 내가 이런 연락도 보냈었다.




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동생들과 나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작은 방에서 그저 온전히 괴로워 해야만 했다.


가만히 있자니 생각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세 가지의 큰 괴로움이 있다.


하나는 엄마가 사라졌다는 사실

둘은 만약에..라는 생각으로 엄마가 그 상황에 있지 않게 할 다양한 변수를 떠올리는 것

셋은 엄마가 죽는 순간의 괴로움을 계속 계속 계속 생각하는 것


이 괴로움은 잠자기 위해 누워있는 순간에도 계속됐다.


어딜가든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잘 자는 나였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왜때문인지 잠이 오면 화들짝 놀라서 깨면서 쉬이 자지 못했다. 정말이지 꿈속으로 현실을 피하고 싶었는데도.


생각을 돌리기 위해 유튜브 숏츠를 일부러 봤다.

생각이 돌려지는 듯하다가도 결국 모든 영상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 엄마로 귀결된다.


눈을 감으면 엄마가 마지막 실루엣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수영복을 함께 고르던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내가 어디선가 본 영화 장면들이 엄마로 바뀌어 재생된다.


정신을 잃고 싶은 길고 괴로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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