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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 Jan 02. 2023

이별, 그 후 반년

반 년이 흐른 지금의 주저리

세상이 무너져 내리고 정신이 아득해 숨쉬기도 힘들었던 직후부터,

이렇게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고, 두려워하고 울부짖고 괴로워하던 1일 차,

잠들면 그 사람 없는 냉정한 현실이 싫어, 꿈에서 깨기 싫던 한두 달 차..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벌써 반년이 흐르고 

엄마가 대지에 두발 딛고 숨 쉬던 마지막 해가 유유히 지나, 새해가 밝았다.


강한 척 우리들 몰래 눈물짓고 사랑을 곱씹고 곱씹고 생각하던 아버지,

괴로움에 엄마 생각을 피하기도 하던 여동생,

가족들 몰래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슬퍼하던 남동생,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이제는 함께 엄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 가족이 나눈 이야기와 내가 느끼는 생각의 파편들을 흩뿌려 보려 한다.



애쓰지 말고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렇게..


'안녕'이란 말이 죽을 것처럼 괴롭고, 말이 안 되는 말이라며 외면하고 부정하고,

눈물이 시야를 가리워 제대로 앞을 못 보던 내가,

이제는 비참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지언정.. 그날로 나는 엄마와 이별했구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조금은 인정하게 된 거 같다.


엄마를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그렇게 조금씩 보내주는 중인가 보다.


몇 달 전 꿈에 엄마가 나왔다.

내가 엄마에게 엄마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냐고 울면서 물었다.

엄마가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애쓰지 말고 천천히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하라고.


어떤 뜻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었지만, 그리고 꿈일 뿐이었지만,

그 꿈 덕분에 난 마음을 편하게 가지기로 했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말은 참 맞는 말이다.


고통을 끄집어내고 괴로워하던 나도

고통을 넣어두고 외면하던 동생도


우리 모두가 지금 함께 웃을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가족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마음만은 영원하길


영원할 것 같았던 다섯 가족은 네 가족이 되었다.


가족의 중심이던 엄마가 사라졌지만 강한 우리는 여전히 소중한 가족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항상 옆에 있던 엄마는 없이 이제 넷이서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이야기하고 웃는다.

숙소 예약할 때 다섯 명이라 불편했는데, 이제는 배드추가 없이도 편하게 예약할 수 있다.

차 안이 꽉 찼었는데 이제 여유 있게 가족 모두 차 안에 탈 수 있다.


문득, 이제 이렇게 점점 네 가족임에 적응하고 익숙해져 간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씁쓸하면서도

그럼에도 우리 가족이 손잡고 한 발자국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엄마도 그런 우리를 응원하고 있겠지.


형태가 바뀌어도 여전히 나는 우리 가족을 많이 많이 사랑한다.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족도 마찬가지이길!


가족이라는 그 특별한 유대감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영원한 축복인 것 같다.

엄마와 모든 우리 가족에게 너무너무 감사하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책을 읽다가 입으로 글귀를 다시금 아버지와 우리들의 귀에 되새겼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삶을 완성하는 것이다.."


처음 듣는 글귀는 아니지만 다시 들으니 새로웠다.


엄마는 어떤 생을 살았나.


엄마는 과거에 잡혀있거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현재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던 사람이었다. 현명하고 따뜻하며 인간적이던 사람.


그랬던 엄마라 감사하다.


우리 가족 모두가 엄마의 생은 멋진 삶이었다며, 엄마의 생은 그렇게 완성된 거라 우리들 가슴에 의미를 달리 새겼다.


그렇게 완성이 된 거구나. 엄마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그 유일했던 삶은.


그녀의 멋진 삶에 난 항상 경의를 표한다.

다들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또 존경하겠지만, 내가 유난히 더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만 같다.

(엄마 일기장에서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좀 가져와봤다..ㅎㅎ 공감이 되어서)


나 또한,

언젠가 끝이 오면 그건 끝이 아닌 완성이라고 웃으며 그 끝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란다.

나 자신도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인생은 단 한 번밖에 못 보는 책이며, 누군가는 그것을 알고 구석구석 음미하며 읽지만, 누군가는 대충 훑어보고 끝낸다


엄마의 인생의 책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내가 엄마의 책 끝자락의 부록이나 아니면 감상평 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내 인생의 책은 내가 쓸 수 있고 내가 느낄 수 있으니..


나는 세상에 원망을 소리치기보다는 

그래. 나에게 이 진하고 애틋하고 아프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사랑을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편을 택했다.


행복과 아픔이 없는 잔잔한 책보다는 강하게 아플지언정 강하게 행복한 그런 책이어서 감사하다.

...


알 수 없는 인생과 세상에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는 그저 희로애락을 모두 진하게 느끼며 온전히 맞이하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책에 몇 장은 슬픔에 젖은 장이지만, 그 이후에는 웃을 장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슬픔의 장에서는 온전히 그 드넓은 바다 같던 슬픔을 받아들였었고, 지금도 종종 슬픔은 올라오지만, 점점 이별이 삶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고 시야가 넓어진 단단해져가는 나를 발견한다. 


엄마는 끝없이 아마 내 인생 마지막 끝자락까지 그렇게 가르침을 주시겠지:)

멋진 사람은 생 후에도 멋지다. 영원히 감사할 사람.


끝까지 나와 내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길..


글을 읽는 모두가 자신의 삶을 모두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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