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많이 이뻐해 주셨고 믿어주셨던 분이 정년퇴직을 하셨다.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 이 분과 함께 일했던 때가 가장 행복하게 열심히 일했던 시절이었다. 뒤에서 항상 지지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선배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 준 분이셨고 그렇기에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상사와 해외 출장을 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 중 하나이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곳에서 하루 세끼를 챙겨 먹어야 되고 운전도 해야 하며 업무도 펑크가 나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상사의 룸 컨디션까지 챙겨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정도이니 출장 기간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업무가 잘 진행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어떤 상사들은 업무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많아서 근처에 가보고 싶은 곳들을 넌지시 얘기하기도 하고, 돈을 아끼려고 무조건 싼 식당, 싼 호텔, 하물며 2인실에서 같이 숙박을 하자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분은 달랐다. 숙소, 이동 방법 등 가기 전에 결정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어떠한 요구사항도 없었다. 현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식사를 할 때나 퇴근 후의 일정도 전적으로 나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출장 기간 내내 아버지와 같이 온 것처럼 편안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고 깊은 얘기도 나눌 수 있어서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출장 기간 중 어느 날이었다. 공항에서 자동차 렌트를 하기 위해 예약한 업체로 찾아가서 이름을 이야기했더니 같은 성을 쓰는 다른 사람 예약 내역을 가지고 와서 그것이 내 것이 맞다고 하였다.
나 : 이거 내 예약 내역이 아니야.
직원 1 : 여기 니 성 적혀 있잖아. 네 것 맞아.
나 : 아니라고, 난 풀네임으로 예약했고 예약 기간도 내가 한 것이랑 달라. 다시 확인해.
직원 1은 내가 영어를 잘 못하니 일부러 더 빨리 말하면서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막무가내였다. 보통 이런 경우 윗사람은 저 멀리서 뒷짐 지고 있거나 같이 온 직원을 타박하기 마련인데 이 분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시고는,
선배 : 예약 내역 한 번 보여줘.
직원 1 : 여기.
선배 : 이거 우리 것 아니네. 지금 30분 동안 당신이 우리 시간 빼앗고 있는 거 알아? 매니저 좀 불러줘.
직원 1 : 매니저 없어. 나한테 얘기해.
선배 : 그럼 헤드쿼터 전화번호 알려줘. 내가 매너지한테 전화해서 이 상황에 대해 컴플레인 좀 해야겠어.
그제야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오더니,
직원 2 : 무슨 일이니?
나 : 내가 예약한 것 좀 찾아줘. 너네 직원이 얘기하는 내역은 내가 예약한 것이 아니야.
직원 2 : 잠깐만, 아 여기 있네. 미안해.
선배 : (직원 1에게) 너 이름이 뭐야?
직원 1 : 왜?
선배 : 아까 말했잖아, 너 우리 시간 너무 많이 빼앗았고 인종 차별했어. 나 너네 헤드쿼터에 정식으로
이 상황 리포트할 거야.
이후 선배는 이런 일 있을 때 쫄지 말라고 하며 동양인들 우습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잘못한 것 없으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웃으면서 다독여 주셨다.
한 회사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정년퇴직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축하할 일이다. 선배의 앞날에 멋진 인생 2막이 펼쳐지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항상 좋은 이야기 많이 해 주시고 든든하게 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일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마워, 항상 멋진 삶을 살길 바라고 모든 게 잘 될 거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