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 월드컵,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추억하다
처음 본 월드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독일전인가 스페인전을 학교에서 본 기억이 난다. 다른 반은 쉬는 시간에만 잠깐 보고 선생님이 TV를 끄고 수업을 했다는데 우리는 소리를 낮춰서 끝까지 봤다. 그렇게 나의 월드컵 추억이 시작되었다.
지역 예선부터 대한민국이 드라마를 쓰며 본선에 올라갔기도 했지만 미국 월드컵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경기가 많았다. 이때 처음으로 다른 나라 선수들 경기를 접했다. 나는 스웨덴을 좋아했는데 아시아 국가로 유일하게 16강에 올랐던 사우디아라비아를 16강에서 이기고 4강까지 올라가 브라질에 석패하며 대회 3위로 마무리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도 나오길 기대했지만 유럽 지역예선에서 떨어져서 나오지 못했다. (이때만 해도 유럽 지역예선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한국 성적이 기대만큼 좋지 않았지만 축구 인기는 이 대회 이후 많아졌다. 친구들은 골을 넣으면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기도 했고 아이 달래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권총 세리머니를 하기도 했으며 골대를 등지고 터닝슛을 날리기도 했다. 당시 학교 축구골대에 그물이 없었는데 선생님께 졸라서 그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물론 곧 찢어져서 사라졌지만.
가장 재미있게 봤던 월드컵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었다. 이전 대회에 나왔던 유명한 선수들을 다시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때부터 해외 선수들을 조금씩 알게 되어 그들의 플레이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스웨덴이 지역예선에서 떨어지면서 지난 대회에서 인상 깊었던 네덜란드를 주목했다. 마침 대한민국과 같은 조여서 더 기대가 됐다. 네덜란드는 월드컵 직전 열린 파라과이, 나이지리아의 친선경기에서 각각 5골을 넣으며 엄청난 화력을 뽐냈다. 그 기억으로 대한민국과의 경기 날 학원가는 봉고에서 친구들과 내기를 했는데 5대 0을 혼자 맞춰버렸다.
네덜란드는 16강에서 유고와 만나서 2대 1로 이겼다. 1대 1로 비기고 있던 상황에서 미야토비치의 페널티킥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왔고 결국 종료 직전 다비즈가 골을 넣고 8강에 진출했다. (이때 유고가 골대를 한 번 더 맞혔던 것 같은데 어떤 장면이지 기억이 안 난다.)
8강 상대는 아르헨티나. 바티스투타의 골포스트 명중, 경기 내내 이어진 로아의 미친 선방, 누만이 퇴장당했지만 곧이어 오르테가의 뻘짓. 많은 명장면들이 기억난다. 베르캄프의 결승골은 너무 유명해 두 말할 필요가 없고 클루이베르트의 선제골을 만들어 냈던 베르캄프의 미친 헤딩 패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두 경기 모두 상대의 페널티킥이 들어갔으면 경기를 끌려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유고는 실축, 오르테가는 차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기회가 네덜란드에게 넘어갔다. (그전부터 오르테가는 할리우드 액션으로 유명했다.) 이 즈음부터 골대를 2번 맞히면 경기를 진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4강전은 브라질.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아무도 속지 않았던 데니우손의 헛다리, 다비즈가 끝까지 쫓아가서 호나우두를 막아낸 장면, 헤딩 원툴 클루이베르트, 명불허전 호나우두. 1대 1로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고 승부차기의 신 타파렐이 경기 종지부를 찍었다. 두 대회 연속 브라질에게 가로막힌 네덜란드는 2002녀 한일 월드컵에는 참가하지도 못했다.
이 대회의 다른 명장면으로 나이지리아 올리세의 스페인전 결승 중거리 골, 칠라베르트와 바르테즈의 16강전 쇼다운, 라우드럽의 세리머니, 수케르의 크로아티아가 생각난다. 선수 입장할 때 나오는 노래, 리키 마틴의 대회 공식 주제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때 익숙했던 선수들로 매일 PC방에서 FIFA97, 98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당시 대회가 끝나고 KBS에서 월드컵 결산을 해주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녹화를 해뒀었다. 동생과 틈만 나면 그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았더니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많다.
지금까지 여러 월드컵을 봐왔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포함해서 이 3개 대회를 가장 열심히 봤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만큼 열정을 가지고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흐릿하게나마 그때 기억이 나는 것 보면 이 마저도 추억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