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롯데 자이언츠를 추억하다.
92년도에 롯데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었다. 자주색 가방에 이것저것 들어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야구장을 갈 때면 글러브를 넣어 둘러매고 다녔다. 마침 그 해 롯데가 우승을 하면서 우승 기념으로 회원들에게 기념 시계를 나누어 주었는데 사직구장에서 몇 시간을 줄을 서서 받아왔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 주말이면 알루미늄 배트 위쪽에 글러브를 꽂고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테니스 공으로 시합을 했는데 이 공을 잃어버리면 집에 갔다. 잘 못 치거나 잘 못 던져서 하나뿐인 공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 사람은 온갖 원망을 듣기 마련이었다. 아파트 저층 유리창도 많이 깨먹었고 스윙하다가 자동차를 쳐서 사과하러 다니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포츠 채널이 없었던 때라 중계를 잘 볼 수 없었고 밤늦게 하는 스포츠 중계석에서 관련 영상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원 가는 봉고에서 라디오 중계를 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학원가는 길이 그리 싫지 않았다. 아웃 카운트 하나하나에 아쉬워했고 모두가 전문가가 된 양 열띤 토론을 펼쳤다. 학원에 도착했는데도 득점 찬스나 위기 상황이 끝나지 않으면 지각을 불사하기도 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사님께 꼭 물어보는 것이 '오늘 롯데 이겼어요?'였으니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으리라.
처음 사직 구장에 간 날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데 야구장에 들어가는 순간 그 크기에 압도되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밤이 되니 쌀쌀해서 엄마가 미리 챙긴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던 옷 위에 입었다. 압권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전부 라이터를 꺼내 들고 불을 켰다, 껐다 반짝반짝거렸던 것이다. 요즘은 흡연자가 많이 없어서 그런지 위험해서 그런지 이 라이터 응원이 없어졌는데 아직도 그 시절의 야구장을 떠올릴 때면 이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많은 롯데 팬들이 잊지 못하는 시즌이 1999년도 일 것이다. 사직에서 했던 플레이오프 3차전과 5차전을 갔었다. 3차전은 아버지께서 표를 어렵게 구해 오셨는데 경기 내용이 지루해서 아버지가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5차전은 경기 내내 너무 추워서 캔커피 하나로 매점 아주머니께 데워달라고 부탁하면서 끝까지 봤다. 아저씨들이 외야에서 '홀'을 그렇게 외쳐댔는데(그때 삼성 외야수 이름이 '홀'이었다.)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던 홀 선수도 기억이 난다. 경기 막판 임창용이 나오자 게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호세의 끝내기 홈런이 터졌고 그 공이 슬로비디오처럼 우리 옆으로 떨어졌다. (그날 밤 스포츠 뉴스에 나와 친구들이 좋아하고 있는 모습을 아주 흐릿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만 알아볼 수 있는..)
'하필 부산에 태어나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됐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래도 90년대에는 잘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성적을 살펴보니 한국시리즈를 갔던 92년, 95년, 99년을 제외하고는 특별하게 잘한 시즌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열광을 했던 것인지.. 주말에 홈경기가 있으면 토, 일요일 이틀 연속으로 가기도 했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야구장 갔다 온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매일 저녁 롯데 야구 중계를 챙겨 보셨다. 물론 시즌 초에는 열심히 보시다가 끝으로 갈수록 플레이오프에서 멀어지니 재미없다고 안 보시기도 했다. 하루는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야구할 거야. 타자해서 막 치고, 뛰고 하고 싶어.'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야구장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얼마 전에 스톡킹에 나왔던 염종석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 기억이 많이 났다. 하루는 시범경기를 보러 갔을 때였다. 사람도 많이 없었고 경비도 없었던 터라 선수들이 트레이닝하는 곳까지 들어갈 수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가슴 조리며 선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안경을 쓰고 백바지를 입은 키 큰 선수가 나오면서 '니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위험하다이.' 하면서 가방에서 공을 꺼내 사인을 해줬다.
그는 언제나 롯데를 지키고 있었다. 롯데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묵묵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켰다. 염옹이 100승을 할 수 있을지는 우리 사이에서도 큰 관심사였다. 나는 100승을 못해도 롯데에서 은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친구는 팀을 옮겨서라도 100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직 구장에서는 원정 투수가 1루에 견제구를 던지면 관중석의 팬들이 '마!'라고 외친다. 롯데에서 오래 뛰었던 가득염 선수가 SK로 이적하고 나서 견제구를 던졌는데 그때 팬들이 '마!'라고 외쳤던 것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절대 염옹이 다른 팀으로 가지 않았으면 했다.
NC가 창원에 연고를 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동안 롯데 성적에 실망한 일부 팬들은 '이제 NC 응원 할란다.'며 갈아탄 분들이 있었다. 성적이 저조한 팀을 응원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없지만 나는 응원팀을 옮길 수 없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팀이라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기에 이미 우승한 지 30년, 가을 야구 못 한지도 오래되었기는 하다.)
그 시절 그 선수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제일 좋아했던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 김민호, 전준호, 박정태, 김응국, 호세, 기론, 박석진, 마해영.. 세월이 참 많이 흘렀지만 추억은 잊히지 않는다. 그 시절 우리의 일상이었던 '롯데 자이언츠.' 죽을 때까지 롯데 팬일 것 같은 우리.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 만에 우승한 것처럼 롯데가 언젠가 우승하기를 바라지만 무엇보다도 롯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을 선사할 수 있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 사람들이 만나서 옛날 롯데 선수들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을 추억하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