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단짝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10

by 세공업자

형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20대 초반 H를 만난다. H는 형보다 서너 살 많았으며 형편도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고 했다. 집도 있고 부모님도 생존해 계시고 가족들도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편은 아니라고 했다. 둘은 우연히 한 회사의 현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만나 의기투합한 것으로 보였다.


현장직 신입들이 겪어야 하는 텃세들은 응당 있기 마련이다. 지저분하고 먼지가 많이 나는 일, 힘이 많이 드는 일, 허드렛일, 냄새가 많이 나는 화학물질을 다루는 일, 특히 신입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듯한 언행과 차별 등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형은 이런 부분을 많이 힘들어했다.


형은 자신이 회사에서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서면 조용히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곤 집에 와서 내게 회사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마구 불만을 쏟아 내었다. 형은 그만큼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H는 달랐다. H는 회사에서 자신이 겪는 일들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마구 해대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우습게 봐.' '잘 먹고 잘 살아라’라 던 지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고 했다. 형은 자신이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말들을 서슴없이 하는 H가 멋져 보였을까? 그렇게 둘은 단짝이 되었다.


어느 날 형이 H와 함께 세 들어 살고 있는 우리 집에 나타났다. H는 형보다 키가 조금 큰 편이었으며 배가 약간 나왔고 체격도 좋았다. 머리가 짧은 편이었으며 얼굴이 크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둘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항상 즐거워 보였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정말 참 재미있었다. 형이 무슨 말을 할라치면 H는 이렇게 받아쳤다.


"잘난 몸이야?"

"그런 몸이야?"

"잘 났어, 정말~"


형도 마찬가지였다. H가 무슨 말을 하면 "잘난 몸이야?" "그런 몸이야?" "잘 났어, 정말~"로 대꾸하며 두 사람은 즐거워 보였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H가 대단해 보였다. 개그프로그램이나 방송에 나온다면 히트 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말은 그 당시 KBS2 주말연속극 “사랑의 굴레(1989년 4월 22일 ~ 1989년 10월 8일까지 50부작)”에서 고두심 씨가 대 히트를 친 대사였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형에게 "잘난 몸이야?" "그런 몸이야?" "잘 났어, 정말~"이 말을 지겹도록 들어야만 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다니게 되었다. H는 근로기준법도 잘 알았으며 짧게 근무한 급여도 잘 받아 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일자리도 같이 구하고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기도 같이 했다. 두 사람은 가끔 다투기도 했다. 어느 부분에서 의견차이가 있었는지 한동안 왕래가 뜸 하다가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 내가 군대를 다녀와서도 함께 다녔던 것으로 보아 7~8년을 함께 만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형은 H를 만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형의 그 자신감은 세상과 소통하며 사회화되어 가는 방향보다는 적응하지 못하고 단절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 불안 불안해 보였다.

나에게는 그런 형이 자꾸 낯설게만 느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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