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안 나와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11
지난주에 형의 집에 방문했을 때에 TV장식장 위에 있어야 할 TV가 보이질 않았다. 베란다 어디엔가 처박아 놓았거나 작은 창고 방에 넣어두고 열쇠로 잠가놓았을 것이다. 형은 어떤 계기가 있을 때 더욱 예민해진다. 지난해 12월 중순을 전후로 눈이 많이 내리고 흐른 날이 많았다. 위성안테나가 달린 방송은 흐린 날엔 가끔씩 화면이 끊기거나 버퍼링이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TV화면에 위와 같이 낯선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누군가 자신을 전파를 통해 도청하거나 감시한다는 증세가 심해진다. 그 뒤부터 TV를 치워두고 시청하질 않고 있었다.
“8년 전에 설치기사가 위성안테나를 안 달아주고 갔어.”
형은 느닷없이 8년 전 이야기를 시작했다. 8년 전 위성방송설치기사가 처음 개통 할 당시에 위성안테나를 달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왜 자신의 집에 위성안테나를 달아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불만보다는 부품을 빼돌려 자신을 도청과 감시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불안해했다.
나는 TV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형은 위성안테나를 달아주지 않는 한은 TV시청을 안 하겠다고 크게 소리쳤다.
“내가 전화를 해서 안테나 달아주기 전까지는 TV 안 본다고 했단 말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이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아! 안테나 달아주기 전까지는 안 봐!”
“알았어요! 알았어.”
나는 형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진정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TV를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TV장식장)에 있던 TV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게 궁금해요.”
“저기에 있어”
형은 베란다 한 구석에 신문지로 덮어놓은 뭉치를 가리켰다.
“내가 도청 못하게 다 분해해 놓았어!”
<분해해 놓았어!> 이 말이 또렷하게 내 귀에 들어오는 순간 TV가 회복 못 할 정도로 해체되었을까 봐! TV를 또 어디서 구해 와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형은 TV에 감싸진 신문지를 풀어내고 방바닥에 가져다 놓았다.
다행히도 부품들은 제자리에 놓여있었고 다만 연결되어 있던 케이블들은 전부 뽑혀 있었다.
“이거 다시 연결이 가능한 거예요?”
“그럼 가능하지”
“그럼 어디 한번 해 봅시다. 이거 할 수 있겠어요?”
“그럼! 할 수 있지!”
형은 자신 있게 말했고 목소리도 마음도 차분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형은 쭈그리고 앉아 분리해 놓은 케이블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형은 작은 창고방의 자물쇠를 열고 리모컨과 셋톱박스를 그리고 어디에선가 건전지들을 찾아왔다. 형은 TV에 해당되는 물품들을 분리하여 집안 곳곳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나는 리모컨을 들었고 조립된 TV를 향해 전원버튼을 늘렸다. 까만 화면 중앙에 가로줄의 빛이 번쩍하며 TV화면이 열렸다. 까만 테두리 안에 녹색 그라운드에서 축구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이 보였다.
“나온다! 나와. 잘 나오네. 조립을 잘해서 한 번에 잘 나와!”나의 칭찬에 형이 웃는다.
안정을 되찾은 형에게 공동주택에 위성안테나를 가구마다 설치하지 않아도 사용가능한 공동안테나에 대한 설명과 흐리고 비 오는 날에는 TV화면이 끊기는 것은 위성신호가 약해져서 생기는 <정상적인 현상>이라는 것도 차분히 설명했다. 형은 다시 TV를 시청하게 되었다.
형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정신과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소중한 것들을 형은 알려주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은 병원진료와 상담을 꾸준히 받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주변인들의 따뜻한 관심과 소통과 대화일 것이다. 느닷없고 예측불가하고 인식 밖의 일일지라도 인내하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