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12
겨울 날씨치곤 요즘 너무 포근한 느낌에 겨울이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한밤중 창문너머의 세상은 희뿌연 안개로 메꿔져 높낮이도 거리감도 없는 미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겨울비처럼 슬픈 노래를 이 순간 부를까 우울한 하늘과 구름 1월의 이별노래’ 김종서의 ‘겨울비’라는 노래를 사시사철 비만 오면 부르던 군생활 소대장이 문득 생각이 났다. 우수에 찬 목소리, 빗소리는 반주가 된다. 겨울비 내리던 어느 날 그는 슬픈 이별이라도 했을까?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푸르른 숲 속 통나무집 처마 아래에서 겨울비 내리는 풍경이 무심히 바라봐졌다. 제법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지만 요란하지 않게 차분한 소리를 내며 세상에 부딪친다. 누군가 우산도 없이 등산배낭을 메고 지나갔다. 아내가 몇 해 전에 구입해 아끼던 카키색 배낭. 형이었다. 나는 처마 밑을 벗어나 재빨리 형에게 다가가 어딜 가냐고 물었다. 형은 퉁명스럽게 캠핑을 간다고 했다. 캠핑? 비 오는 겨울날 무슨 캠핑이냐고 나는 물었다. 그리곤 준비물이 궁금하여 배낭 지퍼를 열어보았다. 배낭 안에는 여러 개의 가방들만 겹겹이 정리되어 들어 있었다.
“뭐야, 짐이 왜 이래?”내 반응에
“별것 없어”라며 형은 짧게 대답하고는 우산도 두꺼운 점퍼도 없이 빗속을 걸어갔다. 형의 발걸음이 풀 덮인 질퍽한 땅에 닿을 때마다 혼탁한 흙탕물이 아닌 맑은 물이 또렷하게 흩어졌다 차올랐다를 반복했다. 형의 뒷모습이 출렁이는 발 물결 따라 점점이 사라져 갔다.
눈을 막 떴을 땐 미처 돌아오지 못한 의식 탓인지 깜깜한 한밤중의 어둠이 서서히 다가왔다. 요 며칠 흐린 날씨와 오락가락하는 겨울비로 형뿐 아니라 형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연치 않은 꿈이다.
***에필로그***
어느 날 아내는 나와 함께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 승낙했고 아내 덕분에 훌륭한 글벗님들이 있는 그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그때 형과의 이야기‘동행’을 쓴 적이 있었다. 정신장애가 있는 형과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형과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고 50대 중반에 들어선 형이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전에 있었던 형과의 이야기와 앞으로 풀어나갈 형과의 이야기가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우리가 도움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