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 큰 기쁨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13

by 세공업자

회사선배 S의 집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부분이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심적인 부분에서 안정감을 찾으니 회사 일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회사는 수출물량이 많다 보니 늦은 밤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만큼 퇴근시간도 늦어졌다. 인천남동공단에서 자정 가까운 시간대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 시간에 퇴근을 하려면 자가용을 이용하는 직원들에게 부탁하여 동선이 겹치는 부분까지 타고 나와 다시 택시를 이용해야 했으며 그마저도 안 되면 회사에서 큰길까지 걸어 나와 택시를 이용해야 했다. 깜깜한 남동공단의 밤거리도 문제지만 해외에서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밤거리를 배회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형에게 자주 가볼 수 없는 부분이 마음에 많이 걸렸다.


파란색 티코를 타고 다니며 알콩달콩 예쁘게 사내연애를 하는 직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 티코를 얻어 타게 되었다. 티코는 바닥에 껌이 붙어 있으면 바퀴가 붙어서 못 간다는 농담들을 하곤 했었는데 생각보다 차는 잘 나갔다. 가격, 연비, 보험료, 유지비 등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었다. 커플은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CF처럼 실속 있다며 영업사원 못지않게 마음이 혹 할 만큼 자랑하였다. 차량이 약하다는 것 빼고는 여러모로 알차고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사원은 엑센트급, 대리나 과장은 아반떼급, 부장은 소나타급을 타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의 로망은 호랑이 눈을 가진 아반떼였지만 멀고도 먼 희망사항이자 사치였었다.


퇴근이 늦는 날들이 많다 보니 선배 S와 나는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 시간에 택시비로 나가는 비용을 얼추 따져보아도 상당히 많은 비용이 지출되고 있었다. 대략 티코를 24개월 전액 할부를 하고 보험료와 유류비를 포함해도 택시비보다 적게 나왔다. 선배 S에게 집에서 무상으로 지내기도 하고 출퇴근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들기도 하니 내가 티코를 구입하여 적어도 출근(퇴근시간은 다름)만큼은 책임지겠다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렇게 생애 첫 차로 티코를 가지게 되었고 경차는 나에게 상상 이상의 많은 해택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20년이 넘도록 경차를 애용했다.


선배 S가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같이 지내기가 미안해질 때쯤 천만 원짜리 작은 원룸 전세를 얻어서 나올 수 있었다. 선배 S가 결혼할 때에는 그 당시 좋은 TV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현금을 고마운 마음을 대신해 선물하였다. 나는 현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품질검사 일을 했고 회사는 나날이 성장하며 IMF도 잘 극복해 나갔다. 그 덕분인지 현장 조반장을 거쳐 사무실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면 형이 사는 곳에 티코를 타고 들렀고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하면 얼마씩 보태기도 하였다. 형을 회사에서 일하게 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형은 회사에 적응할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다. 형은 어렵지 않은 일에도 힘들어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도 힘들어했다.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고 귀에서는 이상한 소리(이명)가 자꾸 들린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며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단다.


IMF가 끝나갈 무렵 그동안 결혼을 미뤄왔던 직장 동료들은 줄지어 결혼식을 올렸다. 그중에는 몇 번의 만남으로도 서둘러 결혼날짜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 궁금하여 그 짧은 시간에 결혼할 결심이 들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집안 맞고 조건 비슷하고 사람 적당히 맞으면 결혼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맞겠지만 집안과 조건에서 내세울 것 없는 나로서는 마음이 맞고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꼭 알아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이 시기에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원룸보다는 조금 더 넓은 보증금 이천만 원 빌라 전세를 얻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어느 날 형의 집에 들렀을 때, 형은 방의 문과 창문을 빛 하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문지로 겹겹이 바르고 문틈 사이사이를 틈 하나 없도록 테이프로 발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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