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뒷배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9
네 살 많은 누나와 세 살 많은 형은 건강부터가 나와는 달랐다. 누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단거리 육상선수를 했고 형은 중학교 때 장거리 육상선수를 했다. 형은 어려서부터 입안에 침이 많고 소화력이 왕성해서 못 먹는 음식이 없었을 정도로 건강했다고 한다. 반면 나는 코를 질질 흘렸고 소화력이 약해서 감기와 체기를 항상 달고 살 정도로 골골했다. 나에게는 이런 활기 넘치는 누나와 형이 있어 마음이 항상 든든했고 혼자 어딜 가도 기가 죽지 않았다.
형은 동네 유명한 말썽쟁이였다. 형은 골목대장을 하면서 동네 아이들을 줄줄이 달고 다니며 다양한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는 그 무리에 끼고 싶어 ‘형아! 형아!’ 하며 졸졸졸 꽁무니를 쫓아다니다가 이내 지쳐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때가 많았다. 그래도 형은 나에게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개봉)’의 형 ‘진태’(장동건)와 같이 언제나 든든한 뒷배가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형에 대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다투고 나서도 금방 그립고 의지하고 싶고 장난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였다. 나의 평범한 말에 오해하고 나의 사소한 행동에 화를 내어도 형은 언제나 든든한 형임엔 변함이 없었다. 제대 후 형과 다시 만나 반지하에 살지만 함께 직장 생활하며 차근차근 모아가면 조만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욕심이었을까? 함께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각자의 집을 얻어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같은 부서에는 대졸 관리직 직원이 여러 명 있었다. 그중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방을 얻어서 출퇴근을 하는 S와 본가에서 출퇴근을 하는 P가 있었다. 이 두 사람과 근무하면서 회사일의 많은 부분을 배우게 되었고 어울리며 호형호제하게 되었던 참 고마운 분들이다. 가끔 저녁식사와 술자리도 하게 되면서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S는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이었고 지방에 있는 본가에서 전세로 자취집을 구해줘서 혼자 살고 있었다.
S의 자취집은 다세대 주택의 2층에 위치해 있었으며 현관문을 열면 방보다 큰 거실 겸 주방이 있었고 좌측에 독립된 방이 따로 있었다. 나는 농담 삼아 자주 “형? 거기(주방 겸 거실)에 내가 와서 살아도 돼?”라고 물었고 S는 “그래라!” 며 받아주었다. 내가 다시 “진짜지?”라고 재차 확인하듯 물어보면 “그래!”라고 받아주었다.
어려서부터 친형과 같이 살면서 형이 힘들어했던 부분 중 하나는 예민함이었다. 특히 형은 불빛과 소리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다. 두 번째 소원인 ‘형과 따로 쓰는 방을 가져보는 것’도 어찌 보면 이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중고등 학교 때에는 늦게 까지 책을 봐야 하는 때가 많았다. 한 방에 살다 보니 형은 늦게 까지 불을 켜는 것과 부스럭 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형의 생활리듬에 맞춰 생활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한쪽 구석에 스탠드를 약하게 켜고 최대한 숨죽여 책을 보기도 하였고 시험기간에는 동네 독서실에 일일권을 끊어 공부하기도 했었다.
형과 반지하에서 같이 살면서 형은 잠을 푹 자지 못한 다음날은 매우 예민해졌다. 형은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깊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내가 군대에 다녀오기 전보다 더 예민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숙면을 하지 못한 다음날은 일과시간에 피로를 회복해야 했고 다시 밤에는 숙면을 하지 못했다. 그런 형을 보면서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할 것을 권했지만 형은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고 다툼으로 이어졌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서로를 위해서 우리는 각자 떨어져 살기로 결정했다.
형은 사회친구 H를 비롯한 지인들이 있는 인천 석남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석남동은 오래된 동네로 작고 저렴한 월세방들이 많았다. 형은 조용하며 작고 아담한 방을 얻어 이사를 했다. 나는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회사선배 S의 자취집으로 들어가 무상으로 얹혀살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봐도 S는 참 고마운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