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소원이 바뀌다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8

by 세공업자

공구회사에 입사 후 몇 개월간 누나 집에 거주하면서 조금씩 안정되어 가기 시작했다. 매형과 두 조카와 함께 지내면서 좋기도 했지만 전반적이 상황이 따로 독립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누나는 내가 형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과 같이 살게 된 결정적 이유는 ‘형이 예전과는 다르게 많이 변했다’고 하는 누나의 말이었다. 따로 떨어져 살고 있는 형을 만났고 특별할 것 없는 다짐을 받았다.

형이 꾸준히 직장에 나갈 것과 형제가 같이 살면서 우애 상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고 다투지 말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세대 주택의 반 지하에 위치한 방 두 개짜리, 우리 형편에 맞는 월세집을 얻었다.


주택가 2층 다세대 주택의 반 지하 은 알루미늄 새시로 되어 있는 문을 열면 계단이 놓여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중간공간이 있었고 전면에는 성인 1명이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이, 좌측에는 그보다 조금 더 큰방이 있었다. 작은 방은 내가, 큰 방은 형이 사용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우측 바닥에는 작은 방석크기 정도의 움푹 들어간 콘크리트 공간에 모터가 달려있는 물펌프가 들어 있었다. 이 펌프의 용도가 궁금하여 1층에 살고 있는 관리를 겸하는 아주머니께 여쭤보았다. 그 펌프는 장마철에 하수구의 물이 역류하면 작동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물펌프를 작동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하가 물에 잠긴다고 일러주었다.


반지하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반 지하 집은 특유의 분위기와 냄새가 있었다. 햇볕이 잘 안 들어 습하고 어두웠다. 하수구, 곰팡이, 습기 냄새라고 해야 할까! 꿉꿉하고 퀴퀴한 그런 냄새가 났다. 방바닥은 난방을 해도 습기가 잘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형과 함께 1~2년간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저축하면 지상 월세집이라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희망이 보이는 듯하였다.


직장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업무가 많이 늘어났다. 수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최종완제품이 한밤중에 출고되는 일이 많았다. 생산부에서 출고된 완제품에 대한 최종검사가 진행되어야 대형 화물차량에 실릴 수가 있었다. 생산부에서 잔업이나 철야(익일 01시) 작업이 진행이 되면 완제품 최종검사도 같이 진행이 되어야 했다. 작업지시서와 동일하게 생산되었는지, 제품 규격은 오차범위 내의 품질을 만족하는지 노기스(버니어 캘리퍼스)와 마이크로미터로 치수를 측정하여 합격여부를 판단해야 했기에 신경 쓸 일들도, 퇴근이 늦어지는 날도 많았다.


형은 형 나름대로의 기준과 원칙이 있었다. 특히 TV에서 건강에 관한 내용이 방영되면 철저하게 지키려고 했다. 수면시간은 8시간을 지켜야 한다, 음식은 짜고 맵게 먹으면 안 된다, 어떤 음식이 건강에 이롭다, 탄 음식은 암을 유발하여 먹으면 안 된다, 직장일과 운동 후 근육통이 생기거나 피로가 풀리지 않으면 괜찮아질 때까지 쉬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원칙들이 있었다.


같이 식사하기도 힘들었다. 음식이 약간이라도 눌어붙거나 검은 부분이 있으면 탔다고 먹지 않았다. 먹거리는 본인이 직접 준비하거나 구입해서 먹어야만 안심했다. 형은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에도 많은 부분 제약이 따랐다. 지저분하다, 힘들다,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들었고 대부분 H(20대 초반 직장에서 만난 친구)를 만나러 다녔다. 형은 동생인 나의 말보다는 서너 살 많은 사회친구 H의 말을 더 신뢰하는 편이었다.


형과의 대화는 더욱 힘든 점이 많았다. 평범한 일상이야기에서도 어디서 감정이 상했는지 일단 화부터 내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려 해도 형은 형이라는 우위적 입장에서 동생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이런 부분에서 언성을 높이는 일들이 많았다. 반지하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냄새가 많이 난다, 습하다, 하수구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난다, 공기가 안 좋아 건강에 해롭다며 힘들어했다.


형과 같이 살게 되면서 어려서부터 힘들었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소원인 ‘형과 따로 쓰는 방’을 가지면 갈등이 해소될 거라 생각했던 부분은 ‘형과 따로 살아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몇 개월 형과 같이 살아가면서 더 늦기 전에 서로를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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