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함께 살게 되다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7

by 세공업자

이력서를 여러 곳에 제출하고 나서는 누나 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제일 먼저 연락이 온 곳은 악기제조 회사였다. 그 당시에는 **악기의 피아노 광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었다. TV광고 속의 CM송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피아노~ 맑은 소리 딩딩딩딩 고운 소리 딩딩딩딩 **피아노 **~"은 가사 그대로 맑고 고아서 흥얼흥얼 따라 하기 좋을 만큼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서류를 준비해서 회사를 찾아갔다. 인천 가좌동에 위치한 회사는 인천시민의 자부심과 유명세만큼 규모가 크고 넓었다. 가좌 IC 고가를 버스로 넘어서다 보면 길게 둘러쳐진 콘크리트 블록 담장에 회사명이 크게 각인되어 있었다.


담당자는 어느 파트에서 어떤 일을 할 예정이라는 안내도 없이 무작정 현장으로 인도했고 그곳이 도장(도료를 스프레이건으로 분사해 도포함) 파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현듯 도장일을 하며 힘들어하던 형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형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성년자로서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했던 일이기도 했었다. 그 당시 도장일은 보호 장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졌기에 가뜩이나 예민한 형은 도장분진과 냄새로 두통이 생겨 힘들어했었다. 또 어린 나이에 현장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궂은일 등을 도맡아 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군에서 제대하면서 무슨 일인들 못할 게 없겠다던 자신감은 일을 해보겠다는 긍정적 자신감보다는 이 일은 하기 힘들 것 같다는 부정적 마음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도장파트라는 이유만으로 일을 해보지도 않고 서류를 반환받아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너무 경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큰 회사에서는 도장하는 일에 작업자가 피해가 없도록 잘 대처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다른 파트로 이동시켜 달라고 라도 해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음날 얼굴에 철판을 깔고 다시 찾아갔으나, 서류를 반환해 갔기 때문에 입사가 안 된다는 칼 같은 말을 듣고 돌아서야만 했다. 그래, ‘나는 장사를 배워야 해’라는 혼잣말을 하면서.


다음 날 공구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장사를 배워야 하는데 왜 공구상가에서는 연락이 안 올까? 궁금해서 전화를 해보았다. "사람 안 씁니다." 전화는 뚝 끊겼다. 공구회사 면접을 보던 관리자는 무슨 일들을 해보았냐고 물었고 나는 군 입대 전에 아르바이트로 전자회사에서 제품검사와 불량품 수리를 해 본 적이 있다고 했더니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당시 공구회사에서는 ISO9001을 도입하여 막 시행되고 있던 터라 QC [quality control](품질검사)에 적합한 현장직 직원을 찾고 있었다.


회사는 다이아몬드공구를 생산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공구라고 하면 보통 유리칼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문명이 발전하면 문명을 발전시킬 공구가 필요하듯 매우 다양한 기술집약적인 노하우들이 많은 회사였다. 나름 생각엔 뉴스에서 보았던 옛 조선총독부 중앙 돔 상단 첨탑을 매끈하게 절단하고 본 건물 해체작업에도 사용된 다이아몬드줄톱(diamond wire saw) 등 다양한 공구를 생산하는 업체라고 파악되었다. 나는 현장에 있는 QC(품질검사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품질 수준에 적합한지 들어오는 자재의 수입검사와 출고되는 완제품의 최종검사를 맡게 되었다.


회사는 내수 물량뿐 아니라 수출물량도 많았다. 수출이 많다 보니 생산라인이 밤낮없이 돌아갔고 잦은 잔업과 철야(다음날 01시까지 근무)를 하는 날도 있었다. 회사일에 적응해 가면서 형과 따로 만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누나 집에 얹혀사는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하였다.


누나는 형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형이 예전과 다르게 많이 변화했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형과 월세 방이라도 얻어서 같이 살면 안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 당시 회사일이 바쁘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누나는 반 지하에 방이 두 개 있는 저렴한 월세 집을 알아봐 주었고 그렇게 다시 형과 같이 살게 되었다.

회사에 적응해 가면서 나의 세 번째 소원인 경제력을 갖는 것에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형과 같이 살게 되면서 두 번째 소원인 '형과 따로 쓰는 방을 가져보는 것'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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