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과 다시 만나다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6

by 세공업자

1995년 무덥던 늦여름, 난 군에서의 추억을 뒤로한 채 제대를 했다. 강원도에서의 군 생활동안 형과 누나는 딱 한번 면회를 왔었다.


신병교육대에서 6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면 이등병 계급장을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와서 달아주는 행사가 있었다. 훈련병에서 기간병(이등병)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형과 누나가 훈련소에 와서 이등병계급장을 달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었다. 가족이 오지 않을 경우 훈련소 동기의 가족분이나 훈련소 조교들이 달아주기도 한다. 훈련소에서 편지를 쓸 수 있는 시간에 형과 누나가 훈련소에서의 그 행사에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썼고 형과 누나는 군복무 기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면회를 그렇게 다녀갔다. 이런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면회를 와 달라고 부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형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군복을 입은 나를 경계하듯 거리를 두었다. 형은 여전히 사회생활을 힘들어했고 나는 그런 형을 이해하거나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다. 그때는 그런 형을 이해하기에는 경험도 철도 없었고 마음도 작았다. 무엇보다 형은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으로서 대부분의 형들이 그렇듯 항상 동생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았다.


제대를 할 때쯤에는 입대하기 전 형과 세 들어 살던 단칸방은 신도시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이 신도시 공사장에서 입대하기 전까지 막노동을 하며 용돈을 벌었었다. 형은 신도시의 수많은 단지 어딘가의 작은 아파트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인천 서구 어딘가에 자신의 몸 하나만 겨우 뉘일 수 있을 정도의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전역 후 인천 남동구에 있는 결혼한 누나를 찾아갔고 그곳에 얼마간 얹혀살게 되었다. 누나네 집에 오니 입대할 당시 입고 갔던 옷가지들이 그대로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입대하게 되면 입고 있던 옷가지들을 벗어 누런 전지종이에 말아 노끈으로 십자로 묶어 포장을 했다. 이 포장들은 소포로 집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나는 그 옷가지들을 누나네 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누나는 그 소포를 받아보곤 눈물이 났다고 한다.


군대에 다녀오면서 나는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 과거에 배고픔과 힘듦에 찌들고 끼니를 챙겨 먹을 줄도 몰라 자기 관리를 못했던 나는, 군대에서 생존법을 배우고 익히며 단련되어 스스로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군에서 삼시 세끼를 챙겨 먹게 되면서 체력과 정신력도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대하면 사회에서 못할 것이 없겠다는 정도로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먼저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력이 있어야 스스로 독립을 할 수 있고 대학에 가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관심사병'에서 다뤘던 나의 세 가지 소원을 이뤄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첫 번째 소원은 삼시 세끼를 매일 먹어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소원은 형과 따로 쓰는 방을 가져보는 것이었고

세 번째 소원은 경제력을 갖는 것이었다.


이력서 여러 장을 작성했다. 경력사항에 보통사람들에게 평범해야 할 고등학교 졸업과 육군만기제대라는 두 줄 경력은 마치 훈장보다 더 큰 의미가 되었다. 주간소식지인 올라온 구직란을 샅샅이 훑었다. 그리곤 특별한 기술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과 군필이라는 경력으로는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가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을 만났다. 형은 일주일 또는 한 달이 멀다 할 정도로 회사를 옮겨 다니며 근근이 생활비를 벌었다. 형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주변에 있는 회사들은 빠삭하게 꿰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형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H를 만나게 된다. H는 형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다고 들었다.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둘은 어울려 다녔다. 형이 H와 함께 다니면서 알아본 회사 중 괜찮다고 생각되는 회사를 알려주었다. 벼룩시장에 제법 크게 생산직 구인광고를 실은 다이아몬드공구회사였다. 나는 그 밖에도 악기제조회사 생산직 구인광고에도 관심을 가졌고 남동공단에 있는 공구상가에서 장사를 배워도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여러 장 작성한 이력서를 뒷주머니에 구겨지지 않게 잘 넣었고 입대할 때 입었던 옷가지를 챙겨 입고 제대할 때 신고 나온 전투화를 착용하고 누나 집을 나섰다. 남동공단에 위치한 다이아아몬드공구 생산업체와 가좌동에 위치한 악기제조회사, 그 밖에 남동공단 공구상가 아무 곳이나 방문하여 장사를 배워보고 싶다며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리곤 누나 집에 돌아와 어느 곳이든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