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방문
<동행, 마음휠체어를 타는 사람> 16
형이 회사로 찾아왔다는 경비반장님의 걱정 어린 인터폰을 받고 경비실로 달려갔다. 반장님은 형님을 경비실 2층 접견실로 안내했음에도 형은 기어코 회사 밖에 있겠다고 했다며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는 듯 강조하셨다. 회사 밖으로 나가보니 형은 정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장바구니가 달린 낡은 자전거를 지탱하고 서 있었다. 낡은 자전거는 마치 형을 따라다니는 반려견 같이 서로를 의지하듯 보였다. 형의 단짝친구 H와는 잘 지내고 있는 걸까?
형은 내가 정문에 나타나자 기다렸다는 듯 "K야?" 크게 불렀다. 남루하고 정돈되지 못한 옷차림. 두 볼은 깊게 들어가 양 광대뼈가 더욱 도드리지게 드러나 보였고 두 눈은 퀭한 몰골이 한눈에 보아도 노숙자 같았다.
"K야 돈이 없어" 형은 돈이 없다고 했다. 밥도 못 먹었다고 했다. 잠도 잘 못 잤다고 했다.
나는 지갑에 들어있던 현금을 형의 손에 쥐어 주었다. 형은 누군가 자꾸 자신을 감시하고 괴롭힌다고 했다. 나는 그게 누구냐고 물었다. 형은 귀에서 이상한 소리와 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고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형은 *피해망상이 있는 듯 불안해 보였다. 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 볼일이 끝난 듯 돌아서려 했을 때 나는 형에게 식사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형은 높은 톤으로 고맙다고 말하곤 다시 낡은 자전거를 끌고 멀어져 갔다. 덜거덕덜거덕 소리를 내는 자전거 두 바퀴가 형의 낡은 신발을 따라갔다. 쓸쓸히 작아져 가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 넓은 공단에 자리는 얼마든지 많은데, 그곳엔 형의 자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은 냉정했다. 주어진 역할을 어느 정도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자리가 주어졌다. 형은 묘하게도 반대로 노력하는 듯 보였고 그런 형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쁜 업무 시간대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3층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관리 부서로 옮기며 업체들과의 만남이 매일 잦았다. 입사 초기 때부터 떠돌던 관련 부서의 소문들, 업체에서 들어오는 상납을 받은 담당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정말 그런 일들이 있었을까?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그 말들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런 일들에 더욱 조심했고 불분명한 대가들은 정중히 거절하거나 막무가내 놓고 가는 것들은 계좌로 돌려보냈다.
어느 날 대표님이 나를 불렀다. 업체에서 들어오는 별도의 것들을 받지 않고 돌려보낸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으셨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업체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업체가 우리 회사에 납품하며 결제받는 대금에 포함된 것들이니 잘 정리해서 자재팀 과장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떠돌던 이야기들이 어떻게 흘려가는 것인지 흩어진 퍼즐이 한꺼번에 맞혀지는 듯했다. 업체와 본사는 그렇게 돌고 돌았던 것으로 생각되었다. 소문의 중심은 받은 사람인 실무자에게 초점이 되었고 정작 진실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부분은 아무도 내게 귀띔해 주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나는 그동안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던 부분이 회사엔 정작 마이너스가 된 격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대표님 미팅 후 업체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잘 정리하여 과장님에게 전달해 드렸다. 나는 이 부분에 관해서 처음부터 언급하지 않았던 과장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이 부서에 왔다는 것은 대표님의 신뢰가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이고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에게 경쟁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 뒤 나의 주변엔 많은 것들이 달라져 가기 시작했다.
*피해망상
남이 자기에게 어떤 해를 입힌다는 생각에 늘 집착하는 일. 정신 분열이나 조울병(躁鬱病)의 억울상태에 있는 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다음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