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3>
늦은 오후 지인으로부터 자신이 관리하는 공원에 수채기(걸래빠는 통) 배관에서 새는 수돗물을 손봐줄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본인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업 중이라 가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내 일도 다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알렸으나 배관부속만 조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라며 꼭 좀 조치해 달라고 신신부탁을 해왔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일정은 내일로 미루고 수채통에 연결된 배관에서 누수가 될 법한 부속들을 자재상에서 급히 구입해서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서는 관리인이 기다리고 있었고 물이 새고 있는 수채통으로 안내했다. 관리인은 이곳에서 15년을 근무하고 마지막 근무에 물난리를 겪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만도 한 것이 수채통에 연결된 배관을 살펴보니 간단하게 조이면 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전달받은 대로 연결된 부속에서 누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관이 찢어지면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명만 잘해줬어도 배관을 준비해서 왔을 터였지만 이미 때는 지난 것을 어쩌겠냐 말이다! 조금 전에 방문했던 자재상은 문을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 급히 자재상에 전화를 해서 문 닫고 퇴근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필요한 배관도 미리 준비해 달라고 하곤 그새 어두워진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퇴근시간이 임박한 도로에는 집으로 가려는 차량들이 건물 곧곧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앗불싸! 퇴근러시아워에 걸린 것이다. 집에 일찍 가긴 그른 것이다. 관리인도 퇴근을 못하고 있을 터인데 마음이 조급했다. 서두르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란 생각에 급한 마음을 달래며 꽉 막힌 도로가 풀리기 만을 기다렸다.
공원에 돌아오니 관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채통의 배관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공원 내 수도를 잠가야만 한다. 관리인은 공원의 전체수도를 잠그면 시민들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어 수체통 쪽 라인만 잠가야 한다며 나를 구석진 창고 문쪽으로 안내했다. 창고문을 여니 바닥엔 가로세로 1M 넘는 커다란 철뚜껑이 있었고 그걸 열고 밑으로 들어가 수도밸브를 잠그라는 것이다. 안쪽은 불빛하나 없이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하수구의 비릿한 물 썩는 냄새가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좀비라도 튀어나와 덤버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알지도 못하는 이런 곳에 나보고 들어가라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두운 지하에 내려갔다가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관리인에게 이곳은 나도 잘 모르니 본인이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관리인은 나이가 많아 무릎과 허리도 안 좋고 눈도 안 좋아 치료를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제야 관리인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주름진 얼굴에 한쪽 눈에는 안대를 하고 계셨다. 연세가 꾀 들어 보이셨다. 이런 분이 내려갔다간 더 큰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어두운 지하실로 내려가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119에 바로 알리시라고 당부했다.
지하실은 정말 어두웠다. 비치된 렌턴도 없다니... 아래로 내려가 막대 같은 밸브를 돌려 잠겄으나 수도는 잠기질 않았다. 관리인은 그제야 내 앞에 한 사람이 더 왔다 갔는데 수도도 못 잠그고 새는 물도 못 고치고 갔다는 말을 했다. 그 사람도 못한 일을 내게 하라는 것도 참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관리인이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화장실에 물이 안 나와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인정하고 싶었다. 나는 지하실에서 나와 수도를 고치는 동안 시민들이 잠깐 불편한 건 이해할 거라 설득하곤 공원 전체수도를 잠갔다.
수도배관을 교체하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관리인은 평생을 쉬어본 적이 없으시다고 하신다. 연세를 여쭤보니 625 때 100일을 맞아 난리통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라고도 하셨다. 열몇 살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으시다고 하셨다. 이 관리직도 오늘이 마지막 근무 라시며 내년엔 다른 사람이 오는데 인수인계도 못했다며 후임 걱정을 먼저 하신다. 한쪽에는 15년 동안 사용했다는 장화가 놓여있었다. 얼마나 아껴 신으셨는지 금방 구입한 것만 같았다. 한쪽 옷걸이에는 내일이면 입지 않을 근무복이 정갈하게 걸려있었다.
냉장고는 이미 다 정리해서 내게 줄 간식이 없다며 유일하게 남은 생강차를 따끈하게 내어주시며 미안해하신다. 나는 15년 동안 몸담으셨던 이곳을 떠나시니 섭섭하시냐고 물었다. 관리인은 섭섭한 것보다는 앞으로 일을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하신다. 더 일할 수 있는데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우신 듯하셨다. 물이 새는 것도 오래전부터 그랬었는데 자신이 마지막으로 고치고 가야 후임자가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하신다. 떠나시는 마당에 후임자 불편한 게 마음에 걸리신 듯하셨다.
수도배관은 잘 교체되어 누수가 되는 곳이 없어졌다. 관리인은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물이 안 나오는 동안 변기에 오물은 없는지 먼저 살피신다. 이렇게 성실하신 분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안위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하는 이런 분들이야 말로 공원관리인이 아니라 고위직 공무원을 하셨어야 하는데 말이다.
관리인은 2시간 가까이 퇴근시간이 늦어졌는데도 불평 하나 없으셨다. 나는 관리인께 그만두시게 되면 일을 찾기보다 몸관리를 잘하셔서 건강을 회복하시는걸 최우선으로 하시면 좋겠다고 당부드렸다. 관리인의 마지막 근무에 함께 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셀카를 함께 찍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마음깊이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