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마음수리 3>
모처럼 아내와 서울행에 나섰다. 아내의 지인이자 작가분이 진행하는 그림책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작가분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에 안부가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서울행을 나설 때면 기차를 애용한다. 수원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면 경제적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리에 앉아서 여유롭게 바깥풍경을 즐기수도 있다. 도심에서 더 복잡한 도심인 서울행이지만 기차여행은 묘허게도 오지로 떠나는 설렘을 맛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저녁 아내는 그림책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라는 그림책을 내게 읽도록 했고 나는 소리 내어 어린아이처럼 그림책을 읽어나갔다. 오늘 그림책 모임의 중심이 되는 책이기에 예습을 시킨 것이다.
기차여행의 에티켓 중 하나는 객실에서는 전화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급한 용무가 있으면 바깥 통로에 나가서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한통의 전화가 들어오길래 나는 전화기를 뒤집어 신속하게 무음으로 전환되도록 하고 "곧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선택해서 보냈다. 그런데 또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으니 목소리가 우렁찬 남자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LED전등을 언제 바꿔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전등인지 알 수가 없으니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씀드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사진과 함께 자신은 목사라는 소개글과 함께 언제 조치가능한지 문자메시지가 왔다. 답장을 작성하려는 찰나에 또 전화가 들어왔다. 기차 안이라 대답만 하고 전화목소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목소리가 정말 크고 쩌렁쩌렁하셨다. 늦은 오후시간 예약을 하고서야 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 그 후 그림책수업에도 전화를 하셔서는 언제 가능한지 또 물어오셨고 그 시간에 꼭 좀 와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림책수업은 "산타클로스는 할머니"라는 제목과 함께 크리스마스선물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담이 오고 갔다. 산타클로스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부터 시작해서 선물을 받고 못 받고, 하루밤사이 그 많은 선물을 산타클로스는 배송할 수 있을까? 어떤 선물이 가장 적절한 선물일까? 루돌프는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라는 것 등 별의별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산타클로스는 있다는 것과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계신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내리던 비는 눈비가 섞여 내렸고 늦은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목사님은 또 전화를 하셨다. 비가 내리는데 오늘 전등교체가 가능한지와 오늘 꼭 수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해 오셨다. 늦은 오후 전등을 준비해서 댁에 방문했을 때도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댁에 들어서니 목사님 내외분은 무척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얼굴을 뵙는 순간 수염만 없으셨지 영락없는 산타클로스할아버지와 닮으신 분이셨다. 산타클로스목사님은 목소리가 크셨는데 사모님과 동갑인 43년생이라 귀가 어두워서 잘 안 들리신다고 하셨다. 전화통화 때에도 목소리가 크고 쩌렁쩌렁하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목사님은 50 중반인 내게 결혼은 했느냐? 아이는 있느냐? 교회는 다니고 있지 않느냐는 등 많은 질문들을 하셨다. 목사님은 크리스마스날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이 댁에서 모여 식사를 하시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전등을 이런 상태로 놔둘 수가 없어서 재촉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알이 굵은 대봉감을 챙기시며 집에 가서 집사람과 하나씩 먹으라고 포장하신다. 댁에서 나올 때도 잊지 않으시고 교회에 나가 구원받고 천국 가라고 챙기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들어가시지 않고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시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배웅해 주신다. 산타클로스가 맞으셨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썰매를 타고 선물을 전달할 것이 분명해 보이셨다.
과연 그 많은 선물들을 산타클로스는 어떻게 전달하는 것일까? 산타클로스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많은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산타클로스는 없다고들 아쉬워하게 된단다. 과연 산타클로스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한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눈을 떠 보면 분명 산타클로스의 선물이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산타클로스는 바쁘신 분이기도 하시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으신 분이기도 하신다. 산타클로스는 자신의 임무를 부모님에게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친구에게 그 누구에게도 부여하시곤 그들이 산타클로스가 되는 기적 같은 축복이 일어나게 하신다.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의 신비로운 비밀을 알게 된다면 실망할 것이 아니라 더욱 감사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가짜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산타클로스의 현신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도 가짜 산타클로스가 아닌 진짜 산타클로스로 거듭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실망할 일 또한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유 무형의 모든 것들이 선물일 테니 말이다.
메리크리스마스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