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솔로

<집수리 마음수리 3>

by 세공업자

요즘 들어 부쩍 흐린 날들이 잦아진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많이 추운 것도 그렇다고 많이 풀린 것도 아닌 것이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그런 분위기라고나 할까! 일과를 마무리하고 막 집 앞에 다다랐을 때쯤 전화 한 통이 왔다. 그것도 평소 잘 연락하지 않는 부동산에서 말이다. 내용은 저녁준비를 해야 하는데 주방수전에서 물이 새 밥을 지을 수가 없다고 급히 조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하필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이런 날씨에...

밥을 할 수 없다는 말은 보통 식구들이 많아 한 끼 식사를 사 먹기에 부담이 많이 된다는 말로도 유추가 되기도 한다. 좌회전 신호만 받으면 집인데... 직진을 해야만 했다.


층수가 30층 이상인 꽤 높은 세대 앞에 다다랐다. 초인종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리니 웬 앳된 청년이 문을 열어준다. 어머니 안에 계시죠? 물으니 안 계신다고 한다. 어? 저녁 지으시다 어디 가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은 싱크대 앞으로 나를 안내했고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주방수전에서 물이 새는 것은 노후가 원인이다. 뭣이 되었든 세월에 장사 없듯 오래된 싱크대 수전도 예외는 아니다. 청년은 싱크대 아래를 좀 깔끔하게 정리해 줄 수 없겠느냐고 물어온다. 싱크대 아래를 살펴보니 기본수전의 수도호수가 짧아 연결고압호수를 연장해서 설치를 했다. 이런 것을 사진을 찍어 줬어야 두 번 걸음을 안 하고 준비를 해서 올라오는데, 어머님이 사진을 미흡하게 찍어주신 것 같다고 하니 청년은 자신이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의아한 생각이 들어 청년에게 저녁은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자기가 설거지를 하고 밥을 해야 하는데 수전이 망가져서 못했다고 한다. 그럼 어머님은 어디 가셨느냐고 물으니 직장에 나가셨다고 한다. 세상에나! 요즘 들어 이런 아들이 어디 있을까! 청년에게 학생 아니냐고 물으니 막 수능을 마쳤다고 하는 걸 보니 졸업을 앞둔 고3 학생인 것이다. 수능은 잘 보진 못해서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했다. 그리고 남들이 다 선택하는 요즘 핫한 AI관련학과는 경쟁률이 높아 전통적인 기술직 학과인 토목과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설거지를 원래부터 잘하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놀고 있으니 하는 게 당연하고, 자기 공부시키느냐 힘드신 부모님에게 보답해야 한다며 돈 벌면 제일 먼저 식기세척기를 사서 어머님께 선물하겠다고 한다.


수전에 고압호스를 연결해야 해서 더욱 꼼꼼히 살펴가면 작업을 했다. 청년 말대로 싱크대에 필요 없는 절수기 부품도 떼어내고 호스도 정리하며 깔끔하게 정리해 나갔다. 나도 일찍 집에 들어가 와이프 집안일 도와야 하는데 여기에 수전이 터져 급하게 왔다고 하니 죄송하다고 한다. 그리곤 자기도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되지 뭐가 어렵겠냐고 했다. 청년은 수줍게 삼 형제 중 자신은 둘째이며 모태솔로라고 한다. 나는 모태솔리라는 말보다 삼 형제라는 말에 "어! 삼 형제!"라고 반응하고 말았다.


청년은 수줍게 여태 여자친구 한 번 사귀어 본 적 없는 모태솔로라고 했다. 나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며 자신도 여자친구를 사귀고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다. 나는 순간 가장 평범하게 사는 내가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의아해졌다. 나는 웃으며 뭐가 걱정이냐고 말했다. 요즘 MZ들은 오늘부터 1일!이라고 하며 교제를 시작한다는데 혹시 그런 걸 바라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이런 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대상을 단정 짓기보다는 편안한 만남과 어울림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서로를 알게 되고 그러면서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게 되면 그때 가서 1일을 시작해도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도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게 되면서 성장하고 자신과 맞는 인연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청년은 짐짓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세상구경도 많이 하고 다양하게 경험도 하고 많은 사람들도 만나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꼰대 같은 소리는 그만하고 집에 가야겠다고 짐을 정리했다. 청년은 짐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며 미처 챙기지 못한 연장도 챙겨주었다. 막 나오는 나를 향해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잘 참조하겠다고까지 하니 참 고맙고 순수한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이 나이 먹고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도 많다. 예를 들면 요즘은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좀 쉬면 낫겠지 했지만 좀처럼 좋아지질 않는다. 어릴 적 어머니가 허구헌 날 어깨가 쑤시고 아프다고 하셨던 일을 헤아려본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흡을 차분하게 하며 명상을 하고 체조를 하고 조깅도 하며 몸과 마음을 관리하니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 어머니가 호흡과 명상을 하셨으면 좀 더 오래 사셨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가끔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아내와 가보기도 하고 유명 맛집에 들어가 미식가처럼 맛을 보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안 해본 일들이 너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은 모태솔로인 셈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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