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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장비빨이지

<집수리 마음수리 3>

by 세공업자

의뢰인은 싱크대배관에서 물이 샌다고 한다. 나는 물이 새는 부위를 사진으로 요청했었다. 사진을 살펴보다 뭔가 색다른 모양새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이 싱크대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형태를 갖추고 있었기에 의뢰인에게 우리나라제품이 맞느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외국산 이*아제품이라고 알려왔다. 오~하필 외국산이라니... 이 제품은 외국산에다 세월이 흘러 맞는 배수관을 찾을 수가 없다고 알렸다. 그래도 의뢰인은 한 번만 봐 달라고 부탁해 왔다.


의뢰인의 집에 방문해서 싱크대 아래를 살펴보았다. 싱크대 아래는 이미 넘친 물들로 흥건했고 시커먼 얼룩들은 벽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아래층에 피해가 없는지 걱정이 되었다. 배수통의 뚜껑을 닫고 물을 조금 받아 흘려보냈더니 원활하게 내려가지 않았다. 싱크대 하수관이 막힌 것이다. 그러니 물이 원활하게 배수가 안되고 차오르며 벌어진 틈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의뢰인은 하수구가 막혀 물이 역류하고 있는데도 막혔을 리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싱크대하수구를 뚫은 지가 1년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다.

싱크대배수관을 하수관에서 분리했다. 하수관에 물을 부우니 내려가지 않고 금세 차서 올라온다. 의뢰인은 눈으로 보고도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그럼 1년 전 비싼 비용을 들여 하수구를 뚫었는데 다시 막힌 거냐고 반문해 왔다. 이런 경우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 하수구를 제대로 뚫지 못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름기도 잘 정리해서 따로 버리며 관리한 하수구가 1년 조금 넘은 시점에서 다시 막혔을 리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 당시 하수구를 뚫는 작업자는 최신장비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는 보란 듯 하수구를 뚫었다고 했다. 의뢰인은 장비만 봐도 전문가 다웠다며 믿고 맡겼다고 한다. 작업자는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하수구를 뚫기 시작했고 작업이 끝난 후 비싼 비용을 청구했다고 한다. 의뢰인은 믿고 비용을 냈다고 했다.


의뢰인은 내게 하수구가 막혔다면 뚫어줄 수 있겠냐고 한다. 나는 지난번 작업자가 하수구를 뚫은 지 오래되지 않은 상태이니 그 업자에게 다시 연락해 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작업을 하게 되면 비용이 또 생기기 때문이다. 의뢰인은 놀랍게도 연락하기 싫다고 했다. 이유는 뭔가 장비빨에 현혹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작업에 대한 아무런 상황설명이 없었다고 했다.

나는 하수구를 뚫기 위한 단순한 장비를 챙겨 왔다. 관통기를 하수구에 넣어 작동시켰다. 관통기는 얼마 들어가지 않아 더 이상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거칠게 걸리는 관통기 소음이 하수구가 딱딱한 무언가에 막혀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옆에서 꾸준히 지켜보고 있던 의뢰인께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수구 작업을 시작한 지 시간이 한참이 지났다. 관통기는 하수구 안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하다 무언가에 막힌 듯 시원하게 뚫리지는 않았다. 하수구에 오래 쌓인 노폐물들은 악취와 오염도가 매우 심했다. 적은 양이라도 피부에 닿으면 쓰라리기까지 하기에 신속하게 닦아내야 한다. 물을 채워가며 작업을 해도 뚫리지 않았다. 이번엔 관통기를 밖으로 빼내었다. 관통기에 딸려 나온 것은 1년 정도의 세월 가지고는 형성될 수 없는 돌같이 딱딱하게 굳은 기름덩어리였다ㅠ. 의뢰인께 보여드리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관통기는 하수구 안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고 있었다. 손바닥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작업하던 팔 엔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이젠 포기해야 하나' 조금만 더해보자! '이젠 진짜로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때 쓱 하고 관통기가 들어갔다. 하수구가 뚫린 것이다.

보통 같은 작업 시간의 2~3배 정도는 더 들었던 것 같았다. 의뢰인은 싱크대의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난번에 뚫었을 때는 이렇게 까지 잘 내려가지 않았다며 기뻐했다.


싱크대 아래 하수구는 완전히 꽉 막히지는 않는다. 기름이나 음식물찌꺼기가 조금씩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원활하게 배수가 되지 않게 된다. 적은 양의 물은 어느 정도 내려가지만 많은 양의 물은 한꺼번에 내려가지 못하고 역으로 차 올라 역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역류된 폐수는 싱크대 아래로 넘쳐 가장 낮은 곳을 찾아가게 된다. 바로 아래층 천장이 되는 것이다. 아래층 천장을 뚫고 안쪽에 물기가 떨어지게 되면 조금씩 조금씩 곰팡이가 생기게 되고 천장마감재를 뚫고 밖으로 나타나게 되면 피해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하수구를 뚫는다는 것은 허투루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수구를 뚫고 나서도 다량의 물을 싱크볼에 받아 내려보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물은 원활하게 잘 내려가는지! 싱크대배관에서는 새는 부분이 없는지를 여러 번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이 새어 나오지 않으면 싱크대 아래는 금세 뽀송뽀송 마르기 시작한다. 공동주택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물이기도 하다. 물은 물길을 따라 흐를 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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